김립 (1880년)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김립(金立, 1880년 ~ 1922년 2월 6일)은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며, 사회주의자였다. 본명은 김익용(金翼容)이다. 다른 이름은 김익용(金益庸), 가명은 양춘산(楊春山)이다. 호는 일세(一洗). 중국으로 망명, 고려공산당, 한인사회당에서 활동했다. 재러시아의 연해주 한인 사회에서 언론기관지 한인시보의 발행인과 1918년 신민회의 망명간부회의에 참여하였다. 1918년 5월 11일에는 상하이에서 이동휘 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간략 정보 김입金立, 임기 ...
김입 金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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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권한대행 비서실 실장 서리 | |
임기 | 1919년 8월 1일 ~ 1919년 8월 6일 |
대통령 | 이승만 |
총리 | 안창호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80년 |
출생지 | 조선 함경도 명천 |
사망일 | 1922년 2월 11일 (43세) |
사망지 |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 자베이 구역에서 암살됨. |
학력 | 경성 보성전문학교 |
경력 | 前 신민회 특임행정위원 |
정당 | 무소속 |
친인척 | 오영선(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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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권한대행 비서실 실장 서리에 임명되었지만 사퇴하였고, 1921년초에는 고려공산당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1년 한형권 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의 대표자로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에 참석, 1921년 11월 코민테른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으로부터 200만 루블을 지원받고, 그 중 한형권이 받은 40만 루블을 한인사회당과 한국인 사회주의 청년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운반하던 중, 상하이에서 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의 김구가 보낸 오면직(吳冕稙), 노종균(盧種均) 등의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출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