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프로이센과 프랑스 제2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년 7월 19일 ~ 1871년 5월 10일)은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 제2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보불전쟁(普佛戰爭)이라고도 불린다. 이 전쟁으로 프랑스에서는 제2제국이 무너지고 제3공화국이 세워졌으며,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 연방 내 모든 회원국을 통합해 독일 제국을 세웠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로 불거진 엠스 전보사건이다.[7]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와 프로이센 국민간에 감정이 격해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프로이센의 세력확장을 저지하고 유럽내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고자 하는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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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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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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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프랑스 제2제국 (~1870.9.4 ) | |||||||
프랑스 제3공화국 (1870.9.4~ ) | 독일 제국 (1871.1.18.~ ) | ||||||
지휘관 | |||||||
나폴레옹 3세 |
빌헬름 1세 | ||||||
병력 | |||||||
492,585명[1] 가르드 모바일 417,366명[2] |
정규군 300,000명 후방군 및 예비군 900,000명[3] | ||||||
피해 규모 | |||||||
138,871명 사망[4] |
44,700명 사망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패배시킨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하여 독일 통일을 마무리하고자 프랑스와의 전쟁 명분만 찾고 있었다. 프랑스는 프로이센의 세력확장을 경계하던중 대독일 감정이 악화되자 호전적인 측근들이 나폴레옹 3세를 부추킴으로 인해 전쟁을 하게 되었다.[8] 그러나 불행히도 스당전투에서 패배한후 나폴레옹 3세는 생포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파리의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폐위 당했으며 새로운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871년 1월 18일, 파리시 교외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 수립이 선포된후 프로이센 국왕이었던 빌헬름 1세가 초대 독일 제국 황제로 추대되었다. 항전하던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1871년 1월 28일에 항복했고 같은해 5월 10일에 양국간 종전조약이 체결되며 전쟁은 종료되었다. 승전으로 인해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을 획득하였으며 50억 프랑의 전쟁 보상금을 받았다.[9]
이 전쟁을 통해 프로이센 군대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많은 국가에서 프로이센처럼 군에 참모본부를 설치하였다. 또한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 제1군사강국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군사사상의 흐름도 프랑스로부터 프로이센으로 바뀌게 되었다.[10] 독일-프랑스 관계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까지 적대적인 사이가 되었다. 한편 로마에 상주하던 프랑스 군이 참전을 위해 퇴각하자 이탈리아 군이 로마를 점령하였고 교황청의 세속권력은 완전히 붕괴하였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