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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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친왕 이재면(興親王 李載冕, 완흥군(完興君),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 1912년 9월 9일)은 조선 말기의 왕족·군인·정치인이자 대한제국의 황족·군인으로, 흥선대원군의 적장자(嫡長子)이자 고종의 친형이며 이준용의 아버지이다. 대한제국 성립 후 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되었다가 1910년 흥친왕(興親王)으로 진봉되었다.
이재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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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흥군 | |
재위 | 1900년 ~ 1910년 |
흥친왕 | |
재위 | 1910년 8월 15일 ~ 1910년 8월 29일 |
공 | |
재위 | 1910년 8월 29일 ~ 1912년 |
후임 | 이준용 |
이름 | |
휘 | 이재면 |
별호 | 재면(載冕), 이희, 초명은 재록(載錄),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 다른 작위는 완흥군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안국방 운현궁 |
사망일 | 1912년 9월 9일 (68세) |
사망지 | 일제강점기 경성부 안국정 운현궁 |
국적 | 조선, 대한제국, 일본 제국 |
부친 | 흥선대원군 이하응 |
모친 | 여흥부대부인 민씨 |
배우자 | 풍산 홍씨, 여주 이씨, 첩 1명 |
자녀 | 이준용, 이문용 |
종교 | 유교(성리학) |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
능묘 | 흥친왕릉→흥원 (興園)[1]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제국 육군 |
복무기간 | 1907년 11월 27일 ~ 1910년 10월 |
최종계급 | 육군 부장(副將) |
지휘 | 대한제국 육군 |
서훈 | 대한제국 대훈위 금척대수장 대한제국 대훈위 서성대수장 대한제국 대훈위 이화대수장 |
1863년 음서로 사용이 되었으며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집권기간 중 도승지, 참의, 직제학 등을 지내고,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퇴출당하고 고종의 친정 이후에도 이조와 형조,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한때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동생 고종의 대안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관직은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 궁내부 대신, 육군 부장에 이르렀다.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은 고종과 [[중전민씨(명성황후)]를 몰아내고 이재면의 아들 이준용을 추대하려 했고, 4회의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이재면은 고종의 냉대를 받았고 1899년(광무 2) 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된 뒤에도, 당시 황제의 친형이었음에도 4대 승습에 따른 작위를 받지 못했다. 1907년(융희 1) 완흥군에 책봉되었고, 1910년(융희 4) 8월 흥친왕으로 진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족으로 강등되어 이희 공이 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이고 나중에 개명하여 이희(李熹)로도 알려져 있다. 첫 작위가 완흥군이었으므로 완흥군 이재면으로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