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추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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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역모 사건 또는 이재선 모역 사건, 이재선 쿠데타 사건은 조선 말기의 군사 쿠데타로, 쿠데타 기도 10일 전에 사전 적발되었다. 1881년 8월부터 9월 흥선대원군의 측근 안기영, 권정호, 이철구 등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고종과 명성황후를 폐위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장자 이재선을 추대하려 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여기에는 남인의 당원들, 위정척사파들도 모의에 가담했다.
사건은 광주산성의 장교들이 의금부에 밀고했고, 이윤용 등은 직접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찾아가 발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음력 8월 29일[1] 안기영, 권정호, 이철구 외 30여 명에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추국당한 후 처형당했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생부라는 이유로 처형되지 않았고, 이재선은 처형당했다. 당시 사건을 두고 흥선대원군의 배후조종 설이 있었다.
이재선은 의금부에 갇혔다가 제주도 제주목으로 유배된 뒤 사사되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이를 계기로 이준용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4차례의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대원군은 이후에도 임오군란 당시 월급과 차별로 일어선 군인들을 이용하려 했고, 탐관오리 및 부패관료 척결을 요구하는 세력과 동학의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는 세력이 결집해서 일으킨 동학 농민군을 이용해서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이재선 모역 사건에는 사실 이재선 자신보다 대원군이 더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소문이 당시에 파다했고[2], 이 옥사를 왕후 민씨가 꾸몄다고 말하는 자도 있지만, 안팎으로 운현, 흥선대원군이 화근이라는 얘기가 자자했다.[2] 황현은 자신의 저서 매천야록에 시중에서 돌던 흥선대원군이 사주했다는 설과, 명성황후가 의도적으로 날조했던 사건이라는 설을 모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