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대프랑스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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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Fifth Coalition, 1809년 4월 9일 - 1809년 10월 14일)은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제국과 그에 맞서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과 영국이 결성한 동맹이 벌인 전쟁이다. 4월부터 7월 간 중유럽의 대부분에서 전개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주된 교전은 양 측 모두에게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반도 전쟁으로 벌써 유럽 대륙의 전쟁에 참전한 영국은 오스트리아 군을 돕기 위해 왈헤렌 작전을 펼쳐 네덜란드로 다른 원정대를 보냈으나 이 작전은 전쟁에 있어 작은 영향만 주게 되었다. 바이에른과 도나우강에서의 작전 후에 7월 초 바그람 전투로 인해 전쟁은 프랑스에게 이득이 되게 끝났다. 그 결과로 나온, 오스트리아와의 최근의 관계를 우롱한 쇤브룬 조약은 가혹했다.
제5차 대프랑스 동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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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의 일부 | |||||||
바그람의 나폴레옹, 오라스 베르네 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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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영국 | |||||||
지휘관 | |||||||
프란츠 1세 |
나폴레옹 1세 | ||||||
병력 | |||||||
340,000 오스트리아군 40,000 영국군 | 275,000 | ||||||
피해 규모 | |||||||
100,000+ | 100,000+ |
메테르니히와 카를 대공은 그들의 근본적인 목표인 합스부르크 제국의 유지를 했고 나폴레옹을 전에 프랑스-오스트리아의 평화와 친선의 약속과 맞바꾸어 더 보통의 목표를 찾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세속영지들은 합스부르크의 영지로남아있었다. 하지만 갈리시아는 폴란드에게 주어지고 티롤의 잘츠부르크 지역은 바이에른에게 넘겨졌으며, 프랑스는 카렌시아, 카르니올라와 아드리아해의 항구를 받았다. 이 영토 변화의 결과로써, 오스트리아는 전체 인구의 1/5가량 되는 3백만명이 넘는 국민을 잃었다.
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서 패전했으나 영국,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프랑스와 여전히 반도 전쟁에서 싸우고 있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까지 중앙유럽과 동유럽은 평화로웠다. 러시아 원정은 1813년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의 형성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