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고려 말기의 군인이자 정치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최영(崔瑩, 1316년 ~ 1388년)은 고려 말기의 장군 겸 정치가이다. 본관은 동주(東州)이다. 아버지는 최원직(崔元直)이고, 어머니는 봉산 지씨(鳳山智氏)이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우왕의 왕비인 영비 최씨는 그의 서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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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자, 시호 ...
최영 崔瑩 | |
자 | 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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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무민공(武愍公) |
출생지 | 철원 |
관직 | 우달치(于達赤), 대호군(大護軍), 서해평양니성강계체복사(西海平壤泥城江界體覆使),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평양윤(平壤尹)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巡問使), 전리판서(典理判書),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평리(評理), 찬성사(贊成事), 동서강도지휘사(東西江都指揮使), 계림윤(鷄林尹), 육도도순문사(六道都巡察使), 경상전라양광도순문사(慶尙全羅楊廣都巡問使), 양광전라경상도도통사(楊廣全羅慶尙道都統使), 판삼사사(判三司事), 해도도통사(海道都統使), 수시중(守侍中), 문하시중(門下侍中),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
본관 | 동주(東州) |
부모 | 아버지: 최원직(崔元直) 어머니: 봉산 지씨 부인(鳳山 智氏 夫人) |
배우자 | 정실 류씨 부인 첩실 은씨 |
자녀 | 슬하 1남 2녀 (그 중 적자 최담, 서녀 영비 최씨) |
친척 | 김저(생질) 맹사성(손녀사위) |
주군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복무 | 고려 군사 |
복무기간 | 1348년 ~ 1388년 |
기타 이력 | 가더보 |
묘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대자산 기슭 |
사당 |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최영장군 사당 경기도 개성특급시 덕물산 최영장군사(崔瑩將軍祠) 경기도 양주시 최영장군당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 국사당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최영장군사당 남해군 미조면 최영장군사당 무민사(武愍祠) 부산광역시 수영구 무민사(武愍祠) 부산광역시 동구 무민공 최영장군사당) 충청북도 청주시 기봉영당(奇峰影堂),)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 최영장군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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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으로 출사하여 우달치에 임명된 뒤 관직은 육도 도순찰사, 양광, 전라도 왜적 체복사 등을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1374년에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했고, 1376년(우왕 2)에는 왜구의 침략 때, 육군을 이끌고 논산군 연산의 개태사(開泰寺)로 올라오는 왜구를 홍산(鴻山)에서 크게 무찔러 철원 부원군(鐵原府院君)에 봉작되었으며, 여러 번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고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인임 등을 멀리하였고 1388년 이인임, 염흥방을 제거하였다. 유교 사대부와 동맹을 맺은 이성계와 대립하다가 명나라가 서북면을 요구하자 요동정벌을 주장하여 요동정벌군 총사령관 겸 팔도도통사에 임명되었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반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우왕은 그의 서녀 영비 최씨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고, 이후 우왕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다. 평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 최원직의 유언을 받들어 평생 여색과 재물을 멀리하였다. 사위는 사공민(司空敏)이고, 손녀 사위는 조선 초기에 좌의정을 역임한 재상 맹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