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7세
잉글랜드의 왕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헨리 7세(Henry VII, 1457년 1월 28일 ~ 1509년 4월 21일)는 튜더 왕가 출신으로는 첫 번째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이다(재위 1485년 8월 22일 ~ 1509년 4월 21일). 제1대 리치먼드 백작 에드먼드 튜더와 랭커스터 가계의 마거릿 보퍼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간략 정보 재위, 대관식 ...
헨리 7세 Henry V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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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는 장미를 들고, 목에는 황금양모 기사단 경식을 두른 헨리 7세. 1505년 그림. 그린이 미상. | |
잉글랜드 국왕 | |
아일랜드 영주 | |
재위 | 1483년 4월 9일-1509년 6월 26일 |
대관식 | 1485년 10월 30일 |
전임 | 리처드 3세 |
후임 | 헨리 8세 |
리치먼드 백작 | |
재위 | 1478–1485 |
전임 | 에드먼드 튜더 |
후임 | 폐지 (잉글랜드 왕위에 통합) |
이름 | |
휘 | 헨리 튜더 (Henry Tudor)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57년 1월 28일 |
출생지 | 웨일스 펨브룩 성 |
사망일 | 1509년 4월 21일 |
사망지 | 잉글랜드 서리 리치먼드궁 |
가문 | 튜더 |
부친 | 에드먼드 튜더 |
모친 | 마거릿 보퍼트 |
배우자 | 요크의 엘리자베스 |
종교 | 천주교 |
묘소 | 웨스트민스터 사원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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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 망명지인 프랑스로부터 귀국하여 리처드 3세가 보즈워스 전투에서 전사한 후 즉위하였고,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여 요크, 랭커스터가 대립한 장미 전쟁을 종결지었다.
요크파 귀족의 영지를 몰수하여 왕령지를 확대하였고, 의복하사(a gift from one's clothes), 소송방조(aiding and abetting a suit)를 금지하여 봉건귀족의 세력을 억압하였으며, 성실 재판소를 정비하여 사회질서의 회복과 왕권의 강화에 노력하였다. 또한 상공업을 보호 장려하였으며, 왕실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 등 잉글랜드의 절대주의의 기초를 확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