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제
명나라의 초대 황제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명 태조(明 太祖, 1328년 10월 29일(음력 9월 18일) ~ 1398년 7월 2일(음력 윤 5월 10일))라는 묘호로도 잘 알려진 홍무제(洪武帝 朱元璋)는 명나라의 초대 국왕(재위 : 1368년 ~ 1398년)이다. 본명은 주원장으로 원나라 말기 반원 운동의 핵심에 있었던 홍건적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홍무제 洪武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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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대명 황제 | |
재위 | 1368년 1월 23일 ~ 1398년 7월 2일 |
즉위식 | 홍무(洪武) 원년 1월 4일 (1368년 1월 31일) |
후임 | 건문제(建文帝) |
오왕 | |
재위 | 1364년 2월 4일 ~ 1368년 1월 23일 |
즉위식 | 원 지정(至正) 24년 1월 1일 (1364년 2월 4일) |
이름 | |
휘 | 주원장(朱元璋) |
이칭 | 주중팔(朱重八) 주흥종(朱興宗) 주덕유(朱德裕) |
묘호 | 태조(太祖) |
시호 | 개천행도조기입극대성지신인문의무준덕성공고황제 (開天行道肇紀立極大聖至神仁文義武俊德成功高皇帝) |
능호 | 효릉(孝陵) |
연호 | 홍무(洪武) 1368년 ~ 1398년 |
신상정보 | |
출생일 | 원 천력(天曆) 원년 9월 18일 (1328년 10월 29일) |
출생지 | 호주(濠州) 종리현(鍾離縣) (현 안후이성 추저우시(滁州市) 펑양현(鳳陽縣)) |
사망일 | 홍무(洪武) 31년 윤 5월 10일 (1398년 6월 24일) |
사망지 | 남경 황궁 (현 난징 고궁) |
부친 | 인조(仁祖) 주세진(朱世珍) |
모친 | 순황후(淳皇后) 진씨(陳氏) |
배우자 | 효자고황후(孝慈高皇后) 마씨(馬氏) |
종교 | 불교 |
호주(濠州) 종리현(鍾離縣) 한족 빈농가문에서 태어나 힘든 성장기를 보내다 10대 후반에 황각사(皇覺寺)라는 절에서 출가하였다. 탁발승(托鉢僧)이 되어 여러곳을 전전하다 20대 초반에 홍건적(紅巾賊)에 들어가 곽자흥의 휘하에서 활약하였고, 곽자흥의 양녀 마씨(馬氏)와 결혼하였다. 곽자흥의 군대가 분열되자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아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원나라 강남(江南)의 거점인 남경(南京)을 점령했다. 1366년 스스로 오왕(吳王)이라 칭하고 각지의 군웅들을 굴복시킨 뒤 1368년 스스로 자립해 황제에 올라 대명(大明)을 건국했다. 이후 그는 한족 왕조 회복의 기치를 명분으로 하고, 지방관의 행정, 입법, 군사 권한을 분산시켜 서로 견제하게 하는 한편 중서성을 혁파하고 6부 상서들에게 직접 결제받는 등,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황권 강화를 꾀하였다.
반원(反元) 반몽골과 한족의 국가 재건을 기치로 북벌군을 일으켜 직접 지휘, 1388년 몽골족을 만리장성 밖으로 축출하고 중원을 통일했다. 왕조 성립 뒤에는 지역 토호 및 공신세력을 숙청하고 지방관 파견과 제후국 봉지 임명 등으로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시켰다. 또한 한족의 문화를 부흥시키려 노력했다. 유교 사상에 따라 자급자족 농경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고,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공신들의 대량숙청을 감행하는 비정상적인 공포정치를 펼쳤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시호는 고황제(高皇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