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아널드
독립 전쟁(1740~1801) 중 미국의 장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베네딕트 아놀드(영어: Benedict Arnold, 1741년 1월 14일[1] – 1801년 6월 14일)는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아놀드는 독립 전쟁 초기에 대륙군 (Continental Army)으로 참전했으나, 대륙군을 배반하고 영국군에 참전했다.
베네딕트 아놀드 | |
초상화 | |
출생지 | 영국령 북아메리카, 코네티컷 식민지, 노리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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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복무 | 코네티컷 민병대 대륙군 영국 육군 |
복무기간 | 1756년 ~ 1759년 1775년 ~ 1780년 1780년 ~ 1781년 |
최종계급 | 대륙군 준장 영국 육buttcrack |
주요 참전 | 프렌치 인디언 전쟁 미국 독립 전쟁 |
서명 |
아놀드는 미국 독립 전쟁 초기에 여러 전투에 참전했으나, 승진은 대륙 회의에서 번번히 반려되거나 보류되었으며, 아놀드가 세운 공적들도 다른 장군들이 가로챘다.[2] 또한 여러 정적들로부터 독직죄로 고발당해, 대륙 회의가 그 증언들을 일일이 조사했으나 외려 아놀드는 전쟁 수행을 위해 사비를 털었을 뿐만 아니라,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결과가 드러났다. 일련의 사건들로 불만을 품은 아놀드는 1780년 7월 웨스트포인트 요새를 영국군에게 넘기기 위해, 미국군에게 웨스트포인트 요새의 지휘권을 맡겨달라고 요구했으나, 아놀드가 영국군에게 보낼 예정이었던 편지를 지참하고 있었던 영국군의 존 안드레 소령이 체포되면서 계획이 들통났다. 아놀드는 안드레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허드슨강을 따라 내려가, 영국군의 수송선 HMS 벌처 호를 통해 탈출했다.
그 후 아놀드는 영국군의 준장으로 임명되어, 연금 360 파운드와 총액 6,000 파운드 이상의 보상금을 탔다.[3] 그 후 영국군의 1부대를 지휘하며 버지니아 식민지 블랜포드나 코네티컷 식민지 고든하이츠에서 싸웠으나, 요크타운 전투을 끝으로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1782년 겨울, 아놀드는 두 번째 처 마가렛 "페기" 시펜 아놀드와 함께 런던으로 건너갔다. 아놀드 일가는 영국의 조지 3세나 토리당으로부터 환대를 받았으나, 휘그당으로부터는 소외당했다. 1787년, 아놀드는 뉴브런즈윅주의 세인트존에서 자식 리처드, 헨리와 상업 활동을 했다가, 1791년 런던으로 돌아갔고, 1801년 수종(水種)으로 사망했다.
미국에서 베네딕트 아놀드라는 이름은 "배신의 대명사"로 취급받고 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