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스페인의 왕위 계승권을 두고 벌어진 전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년 ~ 1714년)에서 유럽의 주요 열강들은 힘을 합쳐 프랑스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려는 것을 막아 유럽의 힘의 균형을 바꾸어 놓았다. 관련된 분쟁으로 헝가리의 라코치 독립 전쟁, 프랑스 남부의 세벤 전쟁, 북아메리카의 앤 여왕 전쟁, 인도 식민지의 소규모 분쟁 등이 있다. 이 전쟁에서 빌라르 공작, 스튜어트 왕가의 지지자 베릭 공작, 말버러 공작, 사부아 공자 외젠 등 뛰어난 장군들의 군사적 지도력이 두드러졌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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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만 해전에서 스페인 식민지에서 걷어들인 수백만 파운드의 은을 실은 스페인 보물선을 나포하는 영국과 덴마크 해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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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신성 로마 제국 : 잉글랜드 왕국 (–1706) | 만토바 공국 | ||||||
지휘관 | |||||||
카를로스 3세 |
루이 14세 | ||||||
병력 | |||||||
232,000명[3] | 373,000명[4] | ||||||
피해 규모 | |||||||
알 수 없음 | 알 수 없음 |
1700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재위 1665~1700)가 사망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인 그의 모든 영토를 ―스페인의 공주이자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의 요구에 따라― 루이 14세의 손자 앙주 공작 필리프(Philip, duc d'Anjou)에게 물려주면서, 부르봉 왕가의 필리프는 펠리페 5세(재위 1700~24, 1724~46)가 되었다. 전쟁은 스페인 왕위에 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레오폴트 1세(재위 1658~1705)가 스페인 왕위의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그의 영토확장을 위한 공세를 강화했을 때 다른 유럽 국가(영국을 주도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공화국) 역시 프랑스의 영토 확장을 제어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 측에 참여하였다. 다른 국가들도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거나, 지금 소유하고 있는 영토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와 스페인에 대항하는 연합군에 참여하였다. 전쟁은 유럽만이 아니라 영국 식민지 주민들이 프랑스 식민지 주민(corsairs)과 스페인령인 남미 북안(Spanish Main)에 거점을 둔 사략선, 해적선과 싸운 앤 여왕전쟁으로 알려진 전투들이 북아메리카에서도 벌어졌다. 이들 전쟁의 결과로 인하여 400,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5]
전쟁은 위트레흐트 조약(1713)과 라슈타트 조약(1714)으로 종결되었다. 이 조약들로 펠리페 5세는 스페인의 왕좌를 지켰으나, 프랑스의 왕위는 계승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두 왕국이 합쳐질 위험은 사라졌다.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서 스페인이 소유한 영토의 대부분을 확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중부 유럽에 대한 프랑스의 헤게모니는 종결되었으며, 힘의 균형에 대한 생각은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언급된 이후부터 국제적인 질서의 일부가 되었다.[6]
유럽에서의 전쟁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다른 중요한 전투와 함께 주로 스페인과 중서부 유럽(특히 저지대 국가)에서 벌어졌다. 외젠 공작과 말버러 공작은 스스로를 저지대의 군사령관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