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아치볼드 휠러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1911–2008)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존 아치볼드 휠러(영어: John Archibald Wheeler, [ʤɑ́n ɑ́ːrʧəbɔ̀ːld hwíːlər]; 1911년 7월 9일 - 2008년 4월 13일)는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휠러는 또한 닐스 보어와 함께 핵분열의 기본 원리를 설명했다. 휠러는 그레고리 브라이트Gregory Breit와 함께 브라이트-휠러 프로세스(Breit–Wheeler process)의 개념을 개발했다. 그는 20세기 초에 이미 예측된 중력 붕괴가 있는 물체에 대해 "블랙홀"[1]이라는 용어를 대중화 시켰으며, "양자 거품(quantum foam)", "중성자 감속재", "웜홀" 및 "비트로부터 그것"라는 용어를 발명했고 또한 "단일 전자 우주(one-elecron universe)"를 가정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스티븐 호킹은 그를 "블랙홀 이야기의 영웅"이라고 불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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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아치볼드 휠러 | |
휠러 (1985년) | |
출생 | 1911년 7월 9일(1911-07-09)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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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8년 4월 13일(2008-04-13)(96세) 미국 뉴저지주 하이츠타운 |
주요 업적 | 브라이트-휠러 프로세스 휠러-디윗 방정식 |
배우자 | 자넷 헤그너 |
수상 | A. 크레시 모리슨 상 (1945)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 (1965) 엔리코 페르미 상 (1968) 프랭클린 메달 (1969) 국가 과학 메달 (1970) 외르스테드 메달 (1983) 로버트 오펜하이머 기념상 (1984) 아인슈타인 메달 (1988) 마테우치 메달 (1993) 울프 물리학상 (1997) 아인슈타인 상 (2003) |
분야 | 물리학 |
소속 |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
학위 논문 | 헬륨의 분산과 흡수 이론(Theory of the dispersion and absorption of helium) (1933) |
박사 교수 | 카를 헤르츠펠트 |
박사 학생 |
휠러는 칼 헤르츠펠트Karl Herzfeld 지도하에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립 연구 위원회 장학금으로 브라이트와 보어 밑에서 공부했다. 1939년에 그는 보어와 협력하여 핵분열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액체 방울 모형(liquid drop model)을 사용하여 일련의 논문을 작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는 시카고에 있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야금 연구소(Metallurgical Laboratory)에서 원자로 설계를 도운 후 워싱턴 주 리치랜드에 있는 핸퍼드 사이트에서 듀폰의 건설을 도왔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프린스턴으로 돌아갔지만 1950년대 초 수소폭탄의 설계와 제조를 돕기 위해 정부로 복귀했으며, 열핵무기의 주요 민간 지지자인 에드워드 텔러와 함께 있었다.[3]
휠러는 경력의 대부분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38년에 합류하여 1976년 은퇴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 그는 프린스턴에서 프린스턴 물리학과의 다른 어떤 교수보다 많은 46명의 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했다.
휠러는 1976년 65세의 나이로 프린스턴 대학을 떠났다. 그는 1976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의 이론물리학 센터장으로 임명되어 1986년 은퇴하고 명예교수(professor emeritus)가 될 때까지 그 자리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