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
한국독립당의 당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허정(許政, 1896년 4월 8일 ~ 1988년 9월 18일)은 지난날 무소속 초선 제헌 국회의원·제2대 교통부 장관·제3대 사회부 장관·국무총리 서리·제8대 서울특별시장·제5대 외무부 장관·제6대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우양 허정 友洋 許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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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초 서울특별시장 재직시 허정 | |
대한민국 제6대 국무총리 겸 제5대 외무부장관 (大韓民國 第6代 國務總理 兼 第5代 外務部長官) | |
임기 | 1960년 6월 15일 ~ 1960년 8월 19일 |
대통령 | 이승만 허정(권한대행) 곽상훈(권한대행) 허정(권한대행) 윤보선 |
부통령 | 장면 (공석) |
총리 | 허정 |
차관 | 최규하 이수영 |
이름 | |
본명 | 허성수 (許聖壽)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96년 4월 8일(1896-04-08) |
출생지 | 조선 경상남도 부산부 초량동 19통 10호 |
사망일 | 1988년 9월 18일(1988-09-18)(92세)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505-13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영국 런던 항해대학교 |
경력 |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겸 외무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국무총리 서리 겸 사회부 장관 교통부 장관 제헌 국회의원 |
정당 | 무소속 |
부모 | 허문일(부), 김술이(모) |
형제자매 | 형 2명 누나 1명 남동생 2명 |
배우자 | 백귀란(재혼) |
자녀 | 허준(아들), 허원(딸)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 |
제1공화국 당시 국무총리 서리를 지냈고, 수석국무위원 겸 외무부장관을 지내다가 이승만 하야 후 대통령 권한대행 겸 수석국무위원, 제2공화국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다. 호(號)는 우양(友洋), 본명은 허성수(許聖壽), 별칭은 '국로'(國老)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을 보좌하였다. 1928년에는 교포신문인 삼일신보를 창간, 발행하다 귀국, 충남의 형석광을 매입, 광업과 상업에 종사했다.
광복 직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나 호헌동지회와 민주당 결성에는 불참했다. 이승만 내각에서 1948년 교통부 장관·1950년 사회부 장관·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1952년 무임소 장관에 재임중 부산정치파동으로 사퇴했다. 1957년부터 1959년까지 제8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내고, 1959년 한일회담 수석대표로 일본에 다녀온 뒤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고 1960년 4월 외무부 장관에 발탁되었다가 4·19 혁명 이후 내각 수반과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1960년 4월 27일부터 1960년 6월 15일까지, 1960년 6월 23일부터 1960년 8월 12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으며 1960년 4월 27일부터 1960년 6월 15일까지 수석국무위원이었다. (당시 내각수반이라는 이름은 내각의 수반이라는 뜻의 관습적인 표현이었을 뿐 법률적인 직함은 아니었다.) 3차 개헌으로 국무총리직이 부활하자 헌법 부칙에 따라 수석국무위원직이 폐지되고 6월 15일에 제6대 국무총리에 자동 취임되어 8월 18일까지 재임했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하였으나, 후보단일화를 위해 사퇴하였다. 이후 박정희 정권 기간 중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제5공화국 때는 정계원로로서 자문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승만과 친분이 있었으나 자유당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제1공화국과 과도 정부 기간 중 공무원의 노동 조합 설립을 반대, 공무원 노조 및 교원 노조 조직 활동을 원천 차단하였다. 4·19 혁명 이후 이승만에게 하야를 권고하기도 했다.
초명은 ‘성수’이다. 아호는 우양(友洋)이고, 본관은 김해[1]이다. '국로'(國老)라는 별칭[2] 도 있다. 부산 출생이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