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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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육군(프랑스어: Grande Armée 그랑드 아르메[ɡʀɑ̃d aʀme][*])은 1805년 나폴레옹 1세가 명명(命名)한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한 군대의 명칭이다. 대육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나폴레옹이 영국 침공을 위해 영국 해협에 맞닿은 해안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이후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 연합군에 맞서 전투를 치르기 위해 동쪽으로 군대를 재배치시키던 1805년경이었다.
대육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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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Grande Armé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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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 1805년 ~ 1815년 | ||||
국가 | 프랑스 제1제국 | ||||
규모 | 최전성기인 1812년 6월 25일(러시아 원정 직전): 680,000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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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Valeur et Discipline | ||||
색 | 청백적 삼색 | ||||
군가 | La Victoire est à nous | ||||
참전 | 제3차 대프랑스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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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주요 지휘관 | 나폴레옹 1세 조아생 뮈라 |
그 이후 대육군은 1806년 - 1807년, 그리고 1812년 및 1813년 - 1814년의 각 작전에 참전했던 프랑스 군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영어권에서 그랑드 아르메(Grande Armée)란 표현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전투를 치르면서 모집한 다국적 군대를 의미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1]
최초 대육군은 나폴레옹 휘하의 육군 원수(元帥;marshals)와 상급 장군의 지휘하에 있던 6개 군단(軍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폴레옹은 1805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프랑스를 침공할 것임을 알아차린 후 대육군에게 곧 라인강을 건너 남 독일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 결과는 울름 전투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의 승리였다.
나폴레옹의 권력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군대의 규모는 커졌다. 1812년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 침공을 감행할 시기, 군대의 규모는 가장 최대가 되어 60만 명에 달했다.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의 부대를 제외한 모든 군대는 프랑스 장군들의 지휘하에 들어갔다. 거대한 다국적 군대는 천천히 동쪽으로 진군하였고, 러시아는 그들이 도착하기 전 후퇴를 개시했다. 스몰렌스크 점령과 보로디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나폴레옹과 대육군의 거대한 병력은 1812년 9월 14일 모스크바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때쯤 러시아군과의 사투와 전염병(주로 티푸스)으로 다수의 병사를 잃어버렸고, 러시아의 청야 전술로 인해 대육군이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이 없었다. 대육군은 모스크바에서 1개월을 보내고, 다시 서쪽으로 퇴각을 시작했다. 추위와 배고픔, 질병에 시달렸고, 코사크와 러시아 게릴라들의 계속되는 공격은 후퇴하던 대육군의 전투 부대로서의 전투능력을 철저히 파괴했다. 이 무모한 원정에서 약 40만 명이 죽었고, 겨우 수만 명의 병력만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2]
나폴레옹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새로운 군대를 도입했고, 1814년 프랑스 방어전에서 이 부대는 맹렬하게 싸웠으며,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도 참전했으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1812년 6월의 대육군과 같은 규모에 도달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