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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페리,OMRI 기사장(이탈리아어: Riccardo Ferri rikˈkardo ˈfɛrri[*], 1963년 8월 20일, 롬바르디아 주 크레마 ~)는 이탈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수비수로서 중앙 수비를 맡았다.[2] 비록 현역 시기 내내 주의를 기울이는 믿음직한 수비수로 활약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3] 본의 아니게 세리에 A 역사상 최다 자책골 기록의 보유자로, 13년동안 인테르나치오날레 선수로 활약하며 아군 골망을 8번 흔들어, 이 부문에서 프란코 바레시와 더불어 공동 최다 기록이다.[4][5] 국제 무대에서,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로 하여 1984년 하계 올림픽, 유로 1988, 그리고 1990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의 형 자코모 또한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토리노의 기술진 일원이다.
페리는 롬바르디아 주 크레마 출신으로, 1981년 10월에 인테르나치오날레 소속으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1군 수비수로 도약한 그는 흑청 군단의 선발 명단에 단골로 올라갔고, 13년 동안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다.[2]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 소속으로 1981-82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했고, 이후 1988-89 시즌에 작은 방패(Scudetto)를 가슴에 달고 같은해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도 석권했고, 1991년과 1994년에 유로파리그를 2번 우승했다.[4] 1994년, 그는 잔루카 팔리우카와 교환되는 조건으로 발테르 젱가와 함께 삼프도리아로 이적하였고, 2년 뒤 은퇴했다.[3]
U-21 국가대표팀에서 자국을 대표로 1984년(3위)[6]와 1986년(준우승)[7]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페리는 이탈리아 성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45번 출전해 4골을 기록했다. 그는 1986년 12월 6일, 2-0으로 이긴 몰타와의 원정 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는데, 첫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득점도 신고했다. 그의 마지막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는 1992년에 치렀다.[4]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로 유로 1988에 참가해 조국의 준결승행을 도왔고, 안방에서 열린 1990년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는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석패한 뒤 3위의 성과를 냈다.[3] 그는 1984년 하계 올림픽에도 자국을 대표로 참가했는데,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4강에서 패퇴한 뒤 4위로 마감했다.[8][9]
세계구급의 끈질기고 전투적인 수비수로, 대인 방어에 특화된 페리는 중앙 수비를 맡았다.[10] 기술적 능력에서도 밀리지 않았지만,[11] 수비적인 면에 집중하고 후방에서 경기를 전개하기를 자제했으나,[12] 간혹 프리킥을 맡아 찼다.[13] 그는 공중 경합에도 특화되어 있었으며, 상대를 예측하는 데에도 도가 튼 것으로 알려져 있다.[14] 네덜란드인 전직 밀란 스트라이커 마르코 판 바스턴은 페리와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를 자신이 상대한 최고의 수비수 둘로 꼽았다.[15]
리카르도 페리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북쪽 교외의 브로워드 군을 연고로 하는 인테르 아카데미 플로리다를 맡다가 2022년 7월 25일에 렐레 오리알리를 대신해 인테르나치오날레 단장으로 취임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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