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구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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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Heinz Wilhelm Guderian, 1888년 6월 17일 ~ 1954년 5월 14일)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독일의 군인, 군사이론가이다. 폴란드 및 프랑스 침공에서 전차부대 지휘관으로 전공을 올렸고, 대소련 초기 승전에 기여했다.
간략 정보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Heinz Wilhelm Guderian, 임기 ...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 Heinz Wilhelm Guderi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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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육군장군참모장서리 | |
임기 | 1944년 7월 21일-1945년 3월 28일 |
전임 | 중장 아돌프 호이징거 |
후임 | 보병대장 한스 크렙스 |
장관 | 빌헬름 카이텔 |
지휘관 | 아돌프 히틀러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88년 6월 17일(1888-06-17) |
출생지 | 서프로이센 쿨름 |
사망일 | 1954년 5월 14일(1954-05-14)(65세) |
사망지 | 서독 알가우 |
배우자 | 마르그레테 괴르네(1913년 결혼) |
자녀 | 하인츠 귄터, 쿠르트 |
종교 | 기독교 |
군사 경력 | |
복무 |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
복무기간 | 1907년-1945년 |
소속군 | 육군 |
최종계급 | 상급대장(Generaloberst) |
지휘 | 제2기갑사단 제14기갑군단 제19기갑군단 제11군 돈 집단군 남부 집단군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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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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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데리안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이전 국가방위군에서부터 차량을 이용한 기동전술을 선도했다. 예컨대 그는 전차병들 간에 라디오 의사소통을 하도록 했고 매우 위력적인 충격전술을 고안했다. 1940년, 구데리안은 전차부대를 이끌고 스당에서 프랑스군 방어선을 돌파,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기여했다. 1941년 구데리안은 모스크바를 공격하려 했으나 구데리안과 견해가 첨예하게 불일치했던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공격이 지연되었다.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독일군이 패배하고 구데리안은 예비역으로 전역당했다. 이로써 구데리안의 영향력은 끝났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 이후 히틀러는 산산이 흩어진 기갑군을 재건하는 책임을 구데리안에게 맡겼지만 구데리안은 다른 장성들과 불화하여 권한도 겨우 되찾았다. 이후 육군 장군참모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이때쯤 되면 히틀러가 스스로 육군총사령관 노릇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는 상징적인 임명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구데리안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미군에 붙잡혀 있다가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후 서독 연방군 재무장 고문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