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나치당 집권하의 독일 (1933-1945)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나치 독일(독일어: NS-Staat / Deutschland im Nationalsozialismus)은 나치당과 아돌프 히틀러 총통 치하의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을 일컫는다. 1933년부터 1943년까지 독일국(독일어: Deutsches Reich 도이체스 라이히[*])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으며, 1943년부터 1945년까지는 대독일국(독일어: Großdeutsches Reich / Großdeutschland 그로스도이체스 라이히[*])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독일국 (1933년~1943년) 대독일국 (1943년~194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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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s Reich Großdeutsches Reic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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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 (독일어: 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 | |||
국가 | 독일인의 노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 |||
수도 | 베를린 북위 52° 41′ 동경 13° 24′ | |||
최대도시 | 베를린 | |||
정치 | ||||
정치체제 | 나치즘 일당제 전체주의 | |||
퓌러 | 아돌프 히틀러 | |||
역사 | ||||
• 건국 • 해체 • 멸망 | 1933년 2월 27일 1945년 5월 23일 1945년 5월 28일 | |||
지리 | ||||
1939년 어림 면적 | 633,786 km2 | |||
내수면 비율 | 2.416% | |||
인문 | ||||
공용어 | 독일어 | |||
데모님 | 독일인 | |||
인구 | ||||
1937년 어림 | 69,314,000명 | |||
인구 밀도 | 109.4명/km2 | |||
경제 | ||||
통화 | 라이히스마르크 (RM) |
나치 독일은 정부에 의하여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이어받은 국가로 자칭하며 스스로를 제3제국(독일어: Drittes Reich 드리테스 라이히[*])이라고도 불렀다. 일반적으로 히틀러가 수상직에 오른 1933년 1월 30일을 나치 정권의 시작으로 보며,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5월 연합국에 패전함으로써 약 12년 만에 멸망하였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도움을 받아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상 자리에 올랐다. 곧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키며 권력을 확고히 한 후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당들을 모두 숙청하기 시작하였고,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1934년 8월 2일에 죽자 히틀러는 유일무이한 독일의 절대 권력자로 떠올랐다. 1934년 8월 19일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히틀러는 독일의 총통이 되었고 모든 권력이 총통에게 집중되었다. 집권 초기 히틀러는 국가 주도의 혼합 경제를 통해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불어닥친 대공황의 여파를 군수산업이나 아우토반 건설과 같은 대규모 공공 사업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해내는 듯 하였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실업자가 대규모로 줄자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나치당의 주요 이념에는 인종차별주의, 우생학, 반유대주의 등이 포함되었다. 세계의 모든 인종들 중 백인계 아리아인을 가장 우등한 인종으로 여겼고, 그 중에서도 독일인이 천부적으로 최고인 민족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치당은 집권 직후부터 유대인들을 적대시하며 노골적으로 탄압하였고, 이외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나치당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을 강제수용소에 대거 수감하기 시작했다. 나치 정부는 우생학에 입각하여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자국민 수십만 명을 불임화시키거나 강제 격리하기도 했으며,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을 제정하여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권한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는 나치에 협력하지 않는 기독교 세력이나 학계, 예술계도 감시와 탄압을 받아, 협력하지 않을 시 쫓겨나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만 했다. 교육 정책은 인종주의, 인구 정책, 우생학과 같은 전체주의적인 사상 교육에 집중하였으며 특히 군대와 관련된 교육 내용이 많았다. 또한 나치 독일은 기본적으로 가부장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훨씬 제약이 심해졌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독일은 발전한 국력을 전세계에 과시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당시 독일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영화, 대중집회, 언론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대중 여론을 조작하였다.
나치 독일은 팽창주의적 대외 정책을 펼쳐 군력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을 위협하거나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의 바탕에는 식민과 인종청소를 통해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레벤스라움 사상이 있었다. 독일 민족이 다수 거주하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여 중부 유럽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은 나치 독일은, 곧 1939년에 소련과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 동년 9월 1일에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을 올렸다. 나치 독일은 처음에는 승승장구하였고, 1941년 초에 이르자 유럽 대부분을 장악하거나 영향력을 미쳤다. 나치 독일은 점령지에 국가판무관부를 설치하여 통치하였으며, 특히 폴란드 상당 부분을 완전히 독일 영토로 병합시켰다. 나치 독일은 점령지에서 자원들을 약탈하고 인력을 강제로 동원하여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생산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 정책은 더욱 극단화하였고, 점령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잡아 지정된 게토에 몰아넣어 격리하기 시작했는데, 끝내 1942년부터는 구체적인 최종 해결책이 제시됨에 따라 이들을 모두 강제 수용소로 보내어 몰살하는 인종 청소가 진행되었다. 이는 인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조직적 제노사이드로서, 수 년에 걸친 이러한 나치 독일의 집단 학살을 통칭 홀로코스트라 부른다. 또한 독소전쟁 당시 전선에서 특수작전집단이 돌아다니며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등 전시에 수많은 전쟁 범죄가 이루어졌다.
1941년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였다. 초기에는 소련이 무너지며 독일이 승리를 거두는 듯 해 보였으나, 소련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하고 미국이 연합국 측에 참전하며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독일은 국가적인 총력전 체제로 전환하여 전국의 노동력을 전쟁에 동원하였으나 1943년 후반에 이르자 동부 전선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하였으며, 1944년 후반에 이르자 1939년의 나치 독일의 영토와 비슷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합국 세력은 독일에 막대한 공습을 퍼부었고, 독일은 점차 패망의 길을 걸었다. 연합국 군대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서유럽을 탈환, 동쪽으로 진격하며 나치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서쪽에서는 소련의 붉은 군대가 물밀듯이 밀려오며 나치 독일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1945년 5월, 수도 베를린이 함락되고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나치 독일의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된다. 히틀러는 죽기 전 마지막까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며 필사항전하였고, 이 때문에 독일의 기반시설과 산업 시설들이 대거 파괴되어 패전 이후 부흥에 어려움을 겪었다. 점령군으로 들어온 연합국 세력은 나치 세력을 일소하고자 하였으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에 협력한 자들, 나치에 속해 있었던 자들을 엄격히 처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