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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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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덕(1988년 2월 9일 ~ )은 한국계 미국인프로 야구 외야수이다. MLB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최초의 대한민국 태생 야구 선수였다.[1]

경력

요약
관점

강경덕은 14세에 부모님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2] 그들은 이모와 함께 앨라배마주에서 2년 동안 살았다. 부모님이 앨라배마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애틀랜타 지역으로 이사했다.[3] 부모님이 애틀랜타 지역의 학교를 알아보던 중, 파크뷰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프 프랑코어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강경덕을 그곳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2][3][4] 부모님은 강경덕의 형이 200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으로 돌아갔다.[2]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 탬파베이 레이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2006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 전체 439순위로 강경덕을 지명했다.[5] MLB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최초의 대한민국 태생 야구 선수가 되었다.[1] 조지아 대학교와 같은 4년제 대학의 장학금을 거절하고, 강경덕은 전문대학채터후치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한 시즌 동안 대학 야구를 했다. 2007년 드래프트 이전에 드래프트 앤 팔로우 유망주로 레이스와 계약했다.[1][4][6] 처음에 1백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를 요청했지만, 7만 5천 달러에 계약하기로 합의했다.[3]

강경덕은 프로 첫 두 시즌을 루키 레벨 애팔리치안 리그프린스턴 레이스와 로우 A 뉴욕 펜 리그허드슨 밸리 레너게이즈에서 보냈다. 2009년 강경덕은 싱글 A 미드웨스트 리그볼링 그린 핫 로즈에서 뛰었으며, 팀 내 최고인 .307의 타율을 기록했다. 시즌 동안 볼링 그린의 감독 맷 콰트라로는 강경덕의 능력과 잠재력에 대해 극찬했다: "그는 단지 좋은 타자일 뿐이다. 홈런 타자보다는 2루타 타자에 가깝지만, 메이저 리그에서 많은 2루타와 함께 25개의 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런 종류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아직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있다. 배팅 연습을 보면 공이 배트에서 떨어지는 방식을 즉시 알 수 있다. 많은 원석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 해 강경덕은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서 레이스를 대표했다.[2][7]

2010년 강경덕은 다시 한번 하이 A 계열사인 플로리다 스테이트 리그샬럿 스톤 크랩스로 승격되었지만, 이 해 그의 타율은 60점 이상 하락하여 .241을 기록했고, 홈런은 단 한 개에 그쳤다. 강경덕에게 2010년 시즌에 대해 묻자 "공을 너무 강하게 치려고 했고 너무 자주 과도하게 스윙했다. 지난 시즌에 좋은 해를 보낸 후, 홈런을 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시즌은 큰 실망이었지만, 한 발 물러서서 타석에서 너무 공격적이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8]

2011년 시즌을 더블 A 서던 리그몽고메리 비스킷의 백업 선수로 시작한 강경덕은 316타석에서 11개의 홈런을 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11년 강경덕에게서 또 다른 고무적인 징후가 있었다. 25.6%의 라인 드라이브 비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 중 전체 시스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이는 그의 스카우팅 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타석에서 잘 나갈 때 스윙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라인 드라이브 접근 방식으로 돌아왔음을 시사한다.[9][10] 2012년 시즌을 비스킷에서 시작했다.[11] 강경덕은 더블 A에서 14개의 홈런으로 팀을 이끌었지만, 삼진율이 급증하여 51개의 볼넷에 135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특히 좌투수를 상대로 고전했는데, 90타석에서 .111을 기록했고(우투수를 상대로 255타석에서 .290), 5개의 볼넷에 45개의 삼진을 당했다. 사실 그의 14개의 홈런은 모두 우투수를 상대로 나왔다.

2013년 시즌을 시작하면서 강경덕은 하이 A 샬럿으로 강등되었지만, 17경기에서 .339/.426/.525를 기록한 후 빠르게 몽고메리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15개의 홈런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더블 A에서 17개의 2루타와 7개의 3루타도 기록했다. 60년 만에 몽고메리에서 2년 연속 홈런을 이끈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두 레벨을 통틀어 강경덕은 홈런(16개), 총 루수(193개)에서 경력 최고 기록을 세웠고, 좌투수 상대 약점(.250 대 .252)도 개선했다. 2013년 11월 4일, 강경덕은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3년 11월 1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12] 2014년 더블 A 이스턴 리그의 보위 베이삭스에서 뛰었다. 베이삭스의 외야는 다리엘 알바레스, 로널드 베르무데스, 장즈셴, 강경덕과 같은 선수들로 시즌 내내 매우 붐볐고, 강경덕은 4월 한 달 동안 11경기만 뛰며 출전 시간을 찾기 어려웠다. 종종 좌투수를 상대로 벤치에 앉았고, 이는 그가 리듬을 찾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강경덕의 기록은 6월(.333/.367/.533)과 7월(.293/.336/.424) 동안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경덕은 8월 한 달 동안 기록이 약간 하락했지만, 시즌이 끝날 무렵 다시 공격력이 꽃피웠다. 8월 25일부터 8월 28일까지 이리 시울브스와의 5연전에서 강경덕은 4개의 홈런을 쳐내며 강하게 마무리했다. 전체적으로 강경덕은 376타석에서 106안타를 기록했으며, 이번 시즌 .282/.338/.452의 슬래시 라인을 기록했다. 또한 37개의 장타(22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12개의 홈런), 37개의 타점, 32개의 볼넷, 86개의 삼진을 기록했다.[13][14] 시즌 후 11월 4일에 자유계약선수를 선택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4년 11월 21일, 강경덕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15][16] 2015년 시즌을 더블 A 미시시피 브레이브스에서 보냈으며, 119경기에 출전하여 .271/.347/.384의 타율에 6개의 홈런, 52개의 타점, 4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2016년 3월 30일 브레이브스에서 방출되었다.[17]

파고-무어헤드 레드호크스

2016년 5월 3일, 강경덕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독립 리그)파고-무어헤드 레드호크스와 계약했다.[18] 2016년 파고에서 97경기에 출전하여 .291/.395/.495의 슬래시 라인에 18개의 홈런과 61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2017년 강경덕은 팀에서 100경기에 출전하여 .270/.354/.438의 타율에 11개의 홈런과 50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그 시즌에 옵션을 모두 소진한 후, 강경덕은 2017년 10월 1일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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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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