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왕
신라의 제35대 국왕 (?~765)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경덕왕(景德王, 723년 ~ 724년?[1] ~ 765년 음력 6월, 재위: 742년 음력 5월 ~ 765년 음력 6월)은 신라의 제35대 왕이다. 성은 김(金)이고, 휘는 헌영(憲英). 효성왕의 친동생이며, 아버지는 제 33대 왕 성덕왕. 어머니는 이찬 순원(順元)의 딸 소덕왕후(炤德王后)이며, 왕비는 서불감 김의충(金義忠)의 딸 만월부인(満月夫人, 경수왕후(景垂王后))이다. 효성왕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742년 5월에 효성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경덕왕 대는 신라가 극성기에 달하던 시기였다.
생애
효성왕(孝成王)의 친동생으로 효성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742년 10월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2] 753년 8월에도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었으므로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돌아갔다.[3] 경덕왕 때는 신라가 극성기에 달한 때로 제반 제도·관직을 당(唐) 제도로 개편하는 한편, 경덕왕 16년(757년)에 전국의 행정체제 및 행정단위의 명칭을 대개는 한자식으로 개혁하고,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었다(→ 신라의 행정 구역 참조).[4][5]
경덕왕은 불교 중흥에도 노력하여 황룡사(皇龍寺)의 종을 주조하였으며, 굴불사(堀佛寺)를 비롯하여 영흥(永興)·원연(元延)·불국(佛國) 등의 절을 세웠다. 그는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덕사 종을 만들게 했는데,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며 아들인 혜공왕이 완성하였다. 이 종의 소리는 맑고, 멀리까지 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이름은 '성덕대왕 신종' 또는 속칭 에밀레종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종인 동시에 국보(29호)이며, 후에는 봉덕사 종으로 불렀다. 경덕왕은 당과도 활발히 교역하는 등 산업 발전에 힘써 신라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다.
경덕왕 10년(751년)에는 불국사가 완공되었으며, 757년 3월에는 녹읍이 다시 지급되었다. 그리고 국학을 태학감이라 고쳤다. 또한 집사부의 중시를 시중으로 고쳤다.
가계
기타
문화재
- 경주 경덕왕릉 - 대한민국 사적 제28호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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