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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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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은 인간의 행동이 남긴 물질적 흔적을 통하여 과거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밝히는 학문으로, 사회과학 또는 인문학의 일종이다.

고고학은 과거 인간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역사학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으며, 이로 인하여 고고학을 역사학의 한 분과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1] 그러나 고고학은 과거 인류가 남긴 물질 자료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여타 인류학 분과나 역사학 분과와 차이를 보이며, 이는 고고학이 독립적인 연구 분야로 일컬어지는 까닭이 된다. 고고학은 사라졌거나 쉽게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과거 인류의 흔적을 추적하고 발굴하여 지난 시대 인류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므로 역사 시대 뿐만 아니라 문헌 자료가 없는 선사 시대 또한 연구의 범위가 된다. 연구의 분야에 따라 파생되는 분과 학문으로는 고대 희랍과 로마를 연구하는 고전 고고학, 이집트 고고학, 성서 고고학등이 존재한다. 관련 학문으로는 역사학, 지리학, 지질학, 생물학, 건축학, 음악사학, 미술사학, 인류학 등이 있다.
다만 고고학은 과거 인간의 문화를 밝히기 위하여 인간 유체나 인공물에 대한 분석 외에도 인류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동식물 및 지질 환경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룬다. 이로 인하여 고고학에서는 자연과학적 방법론도 널리 채택되며, 이와 관계된 하위 분과로 동물고고학, 식물고고학, 지질고고학 등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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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
고고학을 의미하는 인도유럽어 Archeology, Archéologie, Archäologie 등의 여러 낱말은 고대 희랍어의 "아르햐이올로기아"(arxaiologia, arxaios: "오래된, 원천의" logos: "학")에 유래한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는 고고학(考古學)이라는 단어를 공통적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서구 고고학을 최초로 받아들인 일본에서 사용한 단어가 한반도와 중국으로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2] 다만 고고(考古, 옛 것을 생각함)라는 단어 자체는 최소한 북송 시기부터 중국 일대에서 사용되어 왔다.
역사
요약
관점
고고학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는 과거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고고학의 학문적 성립 이전에는 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원을 탐구하거나 과거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등의 호고주의(好古主義, Antiquarianism)적인 탐구가 있었고, 여기에서 고전고고학과 문헌고고학, 호고주의고고학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과학적 방법론을 수용하고 이론과 방법에 있어 체계를 갖추며 고고학은 근대 학문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문화사고고학과 과정고고학, 탈과정고고학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세 이론은 현대 고고학의 기틀을 마련하여 현재까지도 비판과 보완을 거듭하며 연구에 일부 수용되고 있다. 현대에는 고고학의 특정한 이론에 관한 논의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포괄한 채 특정 주제에 적합한 연구 방법론을 택하는 것이 주된 연구 양상이 되었다.[3]
근대 이전의 고고학
호고주의적 전통
고고학 연구는 과거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과 호고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 대개의 경우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거나 골동품을 수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타 종족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존재했다. 호고주의적 전통에 기반한 가장 오래된 발굴 기록으로는 이집트 투트모스 4세의 기자 스핑크스 발굴이 있으며, 투트모스 4세는 스핑크스의 발치의 석판에 발굴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 바빌론 지역에서는 기원전 6세기 나보니두스가 수메르의 도시를 발굴하여 발굴품을 전시, 발굴 내용을 기록한 사례가 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귀족과 부유층은 지중해 연안에서 고대의 조각 파편을 수집하여 장식품으로 활용했으며, 문헌 기록 이전에 존재했던 선조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러한 호고주의의 연장선에서 과거 로마 유적에 대한 발굴이 성행했고, 1594년에는 폼페이 유적이 발견되기에 이른다. 또한 영국에서도 스톤헨지의 기능을 추정하고 드루이드족의 존재를 상정하는 등 호고주의적 전통에 기반한 초기 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근대 학문으로서의 고고학
근대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은 지질학적 동일과정설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받아들여지며 인류의 태고성이 인정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문화 진화론 혹은 사회 진화론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사회 진화론을 기반으로 제시된 단선 진화론은 고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세기의 톰센(Christian Thomsen, 1788년~1865년)과 보르사에(Jens Worsaae, 1821년~1885년)가 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지는 이른바 삼시대 체계의 틀을 마련했으며, 이후 러복(Sir John Lubbock, 1834년~1913년)이 석기시대를 다시금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중석기시대로 나누며 삼시대 체계를 견고하게 했다.
문화사고고학
문화사고고학은 '고고학적 문화'의 개념을 기초로, 대개 전파와 이주를 통하여 문화 변동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고고학적 문화는 대개 종족 혹은 민족과 동일시된다. 고든 차일드를 비롯한 문화사고고학자들은 대개 임의로 설정된 고고학적 문화들 간의 지리적 분포와 편년을 수립하는 일에 집중했으며, 각 문화의 경계를 설정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측량과 방격법, 층서법 등 발굴 과정에 있어 여러 과학적 방법론이 개발되고 채택되었으며, 유물의 형식적 속성을 토대로 시간적 순서를 배열하는 형식 편년이 주로 이루어졌다.
과정고고학
과정고고학(Processual Archaeology)은 문화사고고학의 연구 경향을 비판하며 출발하였다. 과정고고학은 연구 과제를 명확히 한 뒤 가설을 설정, 자료를 수집한 뒤 가설을 연역적으로 검증함으로써 과거 인간 행위를 추적하는 것을 주된 방법론으로 삼았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과거 인간 행위에 관한 통일된 법칙을 마련하여 문화 및 문화 변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과정고고학은 1940년대에 개발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비롯한 여러 절대연대측정법의 개발과 체계 이론, 문화생태학 등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체계 이론의 영향 아래에서 과정고고학은 문화 변동의 일반 과정을 고고학 연구를 통해 추적하려 하였다. 1960년대 미국에서 루이스 빈포드(Lewis Binford, 1931년~2011년)에 의해 시작된 과정고고학은 문화사고고학이 비과학적이고 귀납적이라고 비판하며, 과학적 방법론, 통계 기법의 활용과 객관성을 중시하였다.
탈과정고고학
1980년대에 들어 과정고고학은 환경결정론과 과도한 실증주의로 비판되었다. 이후 다원적 해석과 보다 설명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탈과정고고학이 등장하였다. 탈과정고고학은 과정고고학에서 주된 연구 주제가 아니었던 상징과 이데올로기를 정면에서 다루는 한편,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여성의 역할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탈과정고고학은 단순히 하나의 학문적 사조가 아니라 여러 이론적 접근을 한데 일컫는 말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탈과정고고학적 연구는 대부분 증명의 어려움을 비롯한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 경우는 적으며, 여성의 역할에 관해 연구하며 수렵채집사회에서 식물 채집의 중요성을 조명한 것이 대표적인 연구 결과이다.[4]
현대의 고고학
과정고고학과 탈과정고고학 간의 논쟁을 거치며, 두 이론의 장점과 한계가 드러났다. 현대에는 특정 상위 이론의 수정과 그에 대한 수용을 연구하는 대신, 각각의 연구 주제에 알맞은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는 방향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연구 방법론의 변화는 학자에 따라 인지과정고고학이나 실용적 종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각각의 고고학 이론은 과거의 이론을 비판 및 일부 수용하며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현대 고고학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이론의 종합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다만 한국 고고학에서는 이러한 경향과 별개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사적 편년 연구와 고고학적 시대의 설정을 주된 연구 과제로 삼아 왔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한반도는 각 시대 및 지역 별 편년안을 마련했으며, 이러한 편년안은 지금까지도 연구를 거치며 비판 및 수정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중국 혹은 일본의 고고학계와도 어느 정도 통하며, 중국은 세밀한 문화권 설정을 통해 편년안을 마련했고, 일본은 대개 유물의 형식편년을 통해 편년안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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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분야
고고학에는 연구 대상이 되는 지역과 시대, 연구를 위한 방법론에 따라서 수많은 하위 분야가 존재한다. 연구 대상의 시간성에 따라서는 크게 선사고고학과 역사고고학으로 나뉘며, 지리적으로는 유럽고고학, 한국고고학 등으로 나뉜다.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식물고고학, 인골고고학, 계량고고학 등 여러 분야로 나뉜다. 이러한 분류는 때때로 상호 간 연구의 영역이 중첩되며, 타 사회과학 분과나 자연과학의 분과와 겹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고학에 대한 대중적 견해
유럽 지역에서 초창기 고고학은 대개 중산층의 지식인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일반 대중에게는 특정한 유적이나 유물 혹은 버려진 도시를 발견하는 식의 모험적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초창기의 연구는 현재까지 고고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기여하게 된다. 고고학자은 대개 '낭만적인 모험가 혹은 탐험가'로 그려지며, 직업보다는 일종의 취미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영화 속의 고고학자들은 대개 타지에서 금전적·이념적으로 중요한 유물을 수집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고고학에 대한 대중의 현실과 다른 인식 형성에 기여하였다.
대중적 견해와 달리, 고고학은 값비싼 귀금속제 유물이나 왕가의 계곡과 같은 극적인 발굴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인간 생활의 일체를 연구하기 위한 학문으로 조사, 발굴, 데이터 처리, 이론 정리 등 다양한 학술 활동을 수행한다. 또한 아틀란티스처럼 고대에 존재했을 수도 있는 지역을 탐험하고, 이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내리는 것도 고고학의 연구 분야와는 동떨어져 있으며, 이러한 부류의 기술 활동은 대개 사이비고고학, 또는 유사고고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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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고고학자
같이 보기
각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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