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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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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權奕, 1983년 11월 6일 ~ )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투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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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아마추어 시절

대구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하다가 성광중학교 2학년 때 그만뒀다. 이후 경상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당시 포철공고 야구부 감독의 눈에 띄어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2년에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5,000만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으로 입단[1]해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그는 빠른 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제구력 난조를 겪었으며, 데뷔 첫 해에는 시즌이 끝날 무렵이 돼서야 1군에 처음 올라왔다. 2005년에 미국에서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군에 머물렀다.[2] 2007년 시즌부터 서서히 제구가 잡히기 시작하며 7승 1패, 19홀드,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팀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중간 계투 중 탈삼진 1위를 기록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돼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에 일조했고,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실력이 더욱 향상돼 6승, 39홀드를 기록했다. 20홀드를 기록해 최다 홀드상을 수상했지만 이 때의 과부하로 2010년 후반에는 난조를 보였다. 2014년 11월 26일 FA 우선 협상 마지막 날에 돈보다 오래 활동할 수 있는 팀을 찾기 위해 시장에 나오며 협상이 결렬됐다.[3]

2011년 아시아 시리즈

예선 풀 리그에서 중요한 대전 상대였던 호주전, 일본전, 대만전 등 3경기에 구원 등판했지만, 0.1이닝 4피안타, 2실점(4자책)으로 부진했다. 결승전에서 구원 등판했으나 실점을 허용했다.

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11월 28일 4년 32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했다.[4] 2015년 4월 10일 롯데전에서 2.2이닝 51구를 던졌으나 팀이 패배해 빛을 바랬다.[5]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지 못해 2019년 2월 1일에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

방출 후 2019년에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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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은퇴 후

2022년부터 SPOTV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투구 스타일

  • 좌완 투수치고는 직구가 조금 빠른 편이다. 좌투좌타의 오버핸드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 꽂는 스타일로 공을 던지며, 허구연에 의하면 그와 같은 오버핸드로 던지는 투수의 체감 속도는 실제 구속보다 많게는 8km/h, 느리게는 3m/h정도가 차이 날 정도로 그의 투구 폼을 칭찬한 바가 있다. 속구 최고 구속은 157km/h이고, 전체적인 평균 구속은 147~154km/h이다. 평균 1이닝당 1탈삼진을 기록하는 전형적인 탈삼진 투수이고, 몸쪽 승부를 좋아하는 과감한 배짱과 포커 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2009년부터는 제구력을 높이기 위해 구속을 현저히 낮췄지만 빠른 공 평균 구속은 143~152km/h정도가 나온다.[6]

별명

  • 삼성 라이온즈 시절 권오준과 함께 필승 계투조를 구성하며 '쌍권총'이라 불렸다.
  • 2007년에 중간 계투로 등판하며 196탈삼진을 기록해 '닥터 K'라고 불렸다.
  • 2009년에는 조현근, 최원제 등 다른 중간 계투진들과의 실력 차이와 권오준, 오승환의 전력 이탈로 인해 마무리도 겸하며 팀 동료였던 정현욱의 별명을 본뜬 '권노예'라고 불렸다.
  • 빠른 공을 주 무기로 삼는 좌완 파이어볼러지만 속구와 슬라이더 등 단조로운 투구 패턴 때문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마운드에서는 심리적인 동요를 보여 '권작가'라고 불렸다.
  • 한화 이글스 시절에는 '불꽃남자'로 불렸다.
  • 실점을 많이 할 때는 '권핵'이라고 불렸다.

통산 기록

자세한 정보 연도, 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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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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