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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야 고타로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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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야 고타로(일본어: 清宮 幸太郎, 1999년 5월 25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퍼시픽 리그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소속 선수(내야수)이다. 도쿄도 신주쿠구 출신이다.
아버지는 일본 럭비 풋볼 협회 부회장의 기요미야 가쓰유키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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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요약
관점
프로 입단 전
제88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을 본 것을 계기로 와세다 실업 초등부 1학년 때 연식팀의 〈올아자부〉에 입단해 야구를 시작했다.[4][5] 4학년 때 경식 야구로 전향해, 리틀 리그 팀의 〈도쿄 기타스나 리그〉에 소속.[6] 도쿄 기타스사 리그에서는, 2012년의 리틀 리그 세계 선수권에서, 투타에 걸친 활약으로 팀을 견인해 우승에 공헌했다. 이 활약에서 미국 미디어에서는 《일본의 베이브 루스》라고 보도되었다.[7] 2012년 일본 시리즈 제1차전에서는 시구식을 맡았다.[8] 그 후 소속한 〈와세다 시니어〉에서도 3학년 여름에 전국 우승을 경험했다.[9]

와세다 실업 고등부로 진학한 후에는, 1학년이면서 주축 선수로서 기대되어 주로 3번 타자 겸 1루수로서 출전했다. 제9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2홈런을 기록했다.[10][11] 또한 2015 WBSC U-18 월드컵 일본 대표로도 선출됐다.[12] 2년에는 자신이 최고참이 된 신팀에서 주장으로 취임했다.[13] 3학년 때에는 제99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니시도쿄 대회에서는 개회식에서 선수 선서를 했지만, 결승에서 도카이대학 고교에 패해 본 대회 출전을 놓쳤다.[14] 8월 23일, 2017 WBSC U-18 월드컵 일본 대표의 주장을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15] 고등학교 통산 111홈런은 사상 최다 기록으로, 고교 공식전에는 통산 70경기 출전으로 247타수 100안타, 타율 .405, 29홈런, 95타점을 기록했다.[16]
대회 후의 9월 12일에 귀국 후, 가족이나 이즈미 미노루 등 관계자와의 대화를 실시한 뒤,[17][18] 프로 지망 신고를 제출하는 의사를 굳히고,[19] 9월 22일의 기자회견에서 프로 지망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을 표명했다.[20] 9월 25일, 정식으로 프로 지망 신고서를 제출했다.[21] 10월 26일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1995년 후쿠루 류스케(PL학원)를 뒤잇는 고교생 최다 7구단에 의한 경합 끝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가 협상권을 획득하고, 11월 16일 계약금 1억엔+가액 5000만 엔, 연봉 1500만 엔으로 임시계약을 맺었다(금액은 추정).[22][23] 11월 24일에 입단회견이 행해져 등번호는 21번으로 정해졌다.[24]
닛폰햄 시절
2018년
2018년 1월 합동 자율 트레이닝 때 오른손 엄지손가락골절로,[25] 2월 캠프 중에는,[26] 3월 개막전 기간 중에선[27] 급성 복막염으로 긴급 입원하는 등 사고가 이어져 개막 1군 출장을 놓쳤다. 4월 10일에 2군 데뷔를 완수하면,[28] 2군전 15경기에서 4홈런을 발하는 등 복조를 어필하고 1군으로 승격했다.[29] 5월 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전에서 1군 데뷔했다.[30] 5월 9일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첫 타석에 브랜든 딕슨을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날려 데뷔부터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7로 늘리고 드래프트 제도가 실행된 후(1966년 이후 입단)에서는 단독 톱의 신기록이 되었다.[31] 9월 28일, 라쿠텐전(라쿠텐 세이메이 파크 미야기)에 6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해, 제1타석에서 기쿠치 야스노리로부터 선제의 7호 솔로 홈런을 쳐내, 고졸 신인의 홈런 갯수에 1959년의 왕정치와 나란히 역대 9위가 되었다.[32][33] 최종으로, 53경기 출전, 타율 .200, 7홈런, 18타점을 기록했다.[34] 연봉 협상에선, 300만 엔이 상승한 연봉 1800만 엔으로 계약했다.[34]
2019년
2019년 3월 3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개막전(삿포로 돔)의 제4타석에서 파울을 쳤을 때에 오른손목에 통증을 느끼고, 그대로 도중 교대되었다.[35] 다음 4일에 유구골 골절상으로 진단되었고, 5일에 골절 제거 수술을 받았다.[36] 5월 14일의 2군전에서 실전에 복귀해, 5월 24일에 시즌 1군 첫 등록 및 첫 출전했다.[37]
5월 30일 롯데전(삿포로 돔)에서 4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타네이치 아츠키로부터 구단 통산 8000호인 동시에 자신의 시즌 1호 홈런을 쳤다.[38][39] 최종적으로는, 81경기 출전, 타율 .204, 7홈런, 33타점을 기록.[40] 10월에, 전년부터 불안을 갖고 있던 우측 팔꿈치의 수술(우측 팔꿈치 관절 형성술)을 받았다.[41][40] 연봉 협상에는 200만 엔이 상승된 연봉 2000만 엔에 계약했다.[42]
2020년
2020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부상에서의 이탈이 없는 시즌이었지만 96경기에 출전해 타율 .190, 7홈런의 성적으로 끝났다.[43] 연봉 계약에선, 200만 엔이 상승된 연봉 2200만 엔으로 계약했다.[44]
2021년
2021년은 프로 들어간 후 처음으로 1군 승격 없이 끝났다. 연봉은 야구 협약의 감액 제한(25%)에 육박하는 약 23%가 삭감되어 2200만 엔에서 1700만 엔으로 삭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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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의 특징
플레이 스타일이나 동안 등의 공통점에서 〈일본제 베이브 루스〉, 〈일본의 베이비 루스〉, 〈베이브 루스의 재래〉 등이라고도 불린다.[45][46][47] 오 사다하루는 “장거리 타자라기보다 중거리 타자. 거리에 가까운 타자로 좌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평했다.[48]
50미터 달리기 6.3초, 원투 110미터,[17] 1루 도달 시간은 4초 11~4초 15를 기록하고 있다.[49] 수비로는 다리찢기를 할 수 있다.[50]
에피소드
- 고등학교 3학년 때 출전한 여름 고시엔 니시도쿄 대회의 선수 선서에서는, 서두의 〈우리는 야구를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51][52] 기요미야 자신은 이에 대해 같은 해 6월에 사망한 고바야시 마오가 생전에 남긴 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53]
상세 정보
출신 학교
- 와세다 실업고등학교
선수 경력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2018년 ~ )
수상·타이틀 경력
개인 기록
첫 기록
기타
- 올스타전에서의 끝내기 홈런 : 2022년 7월 26일, 대 센트럴 리그전(후쿠오카 PayPay 돔), 9회말에 모리시타 마사토로부터 좌중월 솔로 홈런 ※36년 만에 역대 7번째, 9회 투 아웃 상황에서 치는 것은 사상 최초, 헤이세이 이후 21세기 최초[61]
- 올스타전 출장 : 1회(2022년)
등번호
- 21(2018년 ~ )
연도별 타격 성적
- 2022년 시즌 종료 기준
연도별 수비 성적
- 2022년 시즌 종료 기준.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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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곡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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