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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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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金庾信)은, 1944년 11월에 극작가 김건이 집필한 고전 창극이다.

1940년대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에서 '음악과 무용을 가미한 소신편 창극'이라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며 《춘향전》, 《일목장군》 등과 함께 해당 극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개요

1930년부터 일제의 연극이나 공연의 통제 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직접적인 지도와 감독과 지원 아래서 조직적으로, 의도적으로 연극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당국에서 허가한 단체와 당국에서 발행한 연극협회 회원증을 소지한 사람들만이 무대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조선인도 일본 천황의 신하로서 일본 제국의 '국민'이 되게 하자는 국민극, 제국주의 정책을 지지하고 선전하는 국책극, 태평양 전쟁(소위 '대동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하는 결전극, 조선어가 아닌 일본어로 해야 하는 '국어극' 등이 만들어졌다.[1]

본 창극의 대본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 11월 6일 당시 식민지 조선 연극계의 핵심 기관이었던 조선연극문화협회를 통해서 조선총독부에 제출되었다.

총독부에 제출되었던 대본 3쪽에는 창극의 작의(作意) 즉 작가의 작품 집필 의도가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1944년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국민의 전의(戰意)를 고양시키기 위하여, 조선 역사에서 부모에게는 효, 임금에게는 충, 자녀에게는 교육의 본보기가 되는 김유신을 소환하여 연극을 통하여 조명한다"고 요약된다. 즉 창극 김유신의 전체 내용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영웅인 김유신을 조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소위 '대동아 전쟁')에 조선인들에게도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이에 따른 일본 제국에 대한 국민의식과 전의를 고취시키기 위하여, 조선 역사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유신을 소환하여 창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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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창극의 전반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자세한 정보 연극의 구성, 소제목 ...

대본

요약
관점

창극 김유신의 검열 대본은 조선총독부에 검열을 위해 제출되었는데, 안춘근이 소장하였던 것을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해당 대본은 단권으로 전체 202권 분량이다.[4]

표지는 조선총독부에 대본을 제출한 시기, 조선총독부에 대본이 제출된 경위를 적어 두었다. 이후부터는 상단에 쪽수를 표시하고 대본을 기술하였다. 1쪽에서는 대본을 쓴 작가, 제목, 공연극의 구성, 3쪽에서는 창극의 작의(집필 의도), 5쪽에서는 창극 내용의 경개(梗槪, 줄거리 요약), 이후 7쪽부터 200쪽까지 전체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대본은 상단부에는 한글로, 하단부는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는데, 이렇게 작성한 이유는 조선총독부에 '검열'을 위해서였다. 대본에는 공연을 위한 등장인물의 대사는 물론, 등장인물의 동작 지시, 등장인물의 표정 상황, 창극 공연에서의 출연자들의 동선, 무대 장치 등을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서막의 대본에서는 본 공연에 앞서, 등장인물 전원이 무대로 나오고 주연배우가 연극이 공연되는 이유, 공연을 통해서 관객들이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 상세히 적어 놓았다. 서막(7~10장)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일동 대표.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잠간 말슴 드리고저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먼저 잘 아시는 바 가치 戰局을 마츰내 決戰 段階에 직면하고 있는 이때 우리 半島 同胞에게도 徵兵制 實施의 光榮스러운 분부를 내리시와 這間 우리 半島에서도 만흔 壯丁들이 陛下의 干城으로 勇敢 出陣하야 만흔 活動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아직도 그건 만으로는 皇恩의 萬分之一도 報答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의 동일창극단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저 유명한 신라의 명장 김유신 공의 사적을 들추어 공이 과거에 얼마나 忠誠된 길을 거럿는가-, 또는 자식으로서 어버이로서- 그뿐만 아니라 武士로서 얼마나 아름다운 길을 걸엇는가-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이 演劇을 通하야 가치 배호고저 하는 바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國家에 忠誠된 사람은 다- 똑같은 길을 거럿고 더욱이 武士-요새말로 하면 軍人이라는 것은 언제나 自己 一身과 自己의 家庭은 第二의 問題로 압스는 것은 國家를 爲하야 몸을 밧친다는 一念과 丹誠이 잇섯슬 뿐입니다. 아들을 戰地로 보내신 父母, 兄弟를 戰地로 보내신 兄弟, 또는 男便을 戰地로 보내신 안해 되시는 분은 오늘밤 演劇을 보신 다음 皇國臣民된 자랑과 義務를 가치 銘心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入營을 앞두신 靑年 여러분들은 우리에게는 金庾信 公의 忠誠된 피가 흘으고 花郞의 精神이 아직도 새롭다는 것을 잇지 마시고 公의 忠孝를 본바드시어 半島 同胞의 意氣와 皇帝 陛下께 향한 충절을 후세에 빗내주시기 깊이 ″ 바라는 바임니다.

대본에는 조선총독부의 검열 과정에서 있었던 수정 요구와 그 흔적이 반영되어 있다. 첫 번째 검열은 자구(字句)를 지정하여 이를 수정하라는 요구였는데, 신라 백성들이 신라왕의 은혜를 찬양하는 대목에서 '황은'(皇恩)이라고 부른 것을 '왕은'(王恩) 또는 '홍은'(弘恩)으로 바꿀 것을 요청하였다. 이는 '황은'이라는 단어가 일본 천황만을 위한 용어라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검열 요구였다.

두 번째 검열은 남녀간의 사랑이나 호감을 표하는 대사를 지정하여 이를 수정하라는 요구가 진행되었다. 김유신 이야기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유신이 천관을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사, 김춘추가 김유신 집에 머물며 보희와 문희를 만나고, 문희와 마침내 사랑을 이루는 장면에서의 대사는 아예 검열관에 의해서 모두 삭제되어 있어,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1940년대 당시 참혹한 공연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참고 문헌

  • 유춘동·김낙현 (2023년). 일제강점기 고전창극 김유신 검열대본 연구. 어문연구 제51권 (제2호).

각주

같이 보기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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