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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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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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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金遷, ?~ ?)은 고려 후기 명주(강릉) 출신의 효자로, 몽골 침입기몽골군에게 포로로 잡혀 간 어머니를 찾아가 55냥을 주고 구출한 효행으로 알려져 있다.[1]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는 그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정자 등이 남아 ‘효자 김천 공원’으로 조성되어 전승된다.[2][3]

간략 정보 김천金遷, 출생 ...

생애

김천은 강릉 김씨로 본관은 강릉이며, 출신지는 명주(溟州)이다. 아버지는 김종연, 동생은 김덕린이다. 일명 해장(海莊)이라 불렸다.[1][4]

1258년(고종 45)부터 시작된 몽골의 제6차 침입기에 명주 근처까지 남진한 몽골군에 의해 그의 어머니와 동생이 포로로 잡혀갔다. 당시 15세였던 김천은 길에서 다수가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며 상심하였다.[1]

14년 뒤, 원(元) 지역에서 어머니가 노비로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받고, 몸값을 마련해 출국을 청하였으나 두 차례 불허되었다. 이후 허가를 받아 몽골 동경(東京)으로 가 고려 역어별장과 함께 북주 천로채 등지에서 수소문한 끝에, 몽골 군인 요좌(要左)의 집에서 노파가 된 어머니를 찾아 은 55냥을 주고 풀려나게 하였다. 다만 동생은 같은 시기 구출하지 못했다.[4]

1276년(충렬왕 2) 어머니를 모시고 귀국하였고, 6년 뒤 천로의 아들이 데려온 동생을 다시 은 86냥을 주고 풀려나게 하였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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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 김천의 효행은 대몽항쟁기의 대표적 효행담으로 평가되어 『고려사』 「열전」 효우편에 입전되었다.[4]
  •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효자리 일대에는 전승을 기리는 안내판·정자·비석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역 홍보물과 언론에서는 ‘효자 김천 공원’으로 소개된다.[2][3]

평가

김천의 이야기는 전쟁·포로 상황에서의 가족 구휼과 효의 실천을 보여 주는 사례로, 조선시대 유교 윤리서들(『동국신속삼강행실도』 등)에서 유사 효행담과 함께 도덕 교화의 자료로 활용된 맥락에서 이해되기도 한다.[5]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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