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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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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외 관계는 국가가 대영 제국의 자치령이던 시기부터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고립주의 정책, 그리고 아프리카,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임 있는 국제 행위자로서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유엔, 아프리카 연합, 영연방의 회원국이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의 가능성이 고려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유엔 총회에서 2006년, 2010년, 2018년에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해 선출되었다.[1][2]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아프리카 연합 의장을 맡았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프리카 연합 의장을 맡은 것은 2003년 창설 이후 두 번째이다.[3]
대한민국
양국은 1991년 12월 1일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4] 대한민국은 이전에 1961년부터 1978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나, 아파르트헤이트에 항의하여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418호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5]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주요 거주 인도인 공동체가 있으며, 이들은 시민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인도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1890년대와 1900년대 인도인의 시민권 쟁취 투쟁에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구적으로 이끌었다.[6] 인도인들은 또한 아프리카 국민회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한 투쟁에도 기여하였다. 인도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외교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7] 인도의 이러한 지원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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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
1990년 독립 당시, 나미비아의 경제는 여전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연결되어 있었다.[8] 오늘날까지도 나미비아 경제는 제도적 관계 (예: 남부 아프리카 관세 동맹)와 민간 소유의 광산권을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9]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는 여전히 나미비아 내에서 합법 화폐로 사용되며 (나미비아 달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두 통화는 현지에서 1:1 비율로 거래된다.
나이지리아
잠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루사카에 고등판무관부를 두고 있다.
짐바브웨
짐바브웨 정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나미비아 (남서아프리카)의 독립을 위한 노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남부아프리카의 전선 국가 의장으로서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 의견을 표명했으며, 정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자주 촉구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민주적 변화를 지지하면서도 로버트 무가베는 짐바브웨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반군의 기지로 사용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았다.[10]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정치 위기 이후 전 대통령 타보 음베키는 MDC와 자누 PF 간의 연립정부 구성을 중재했으며, 종종 짐바브웨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 비판을 받았다. 짐바브웨에서 콜레라가 발생한 이후[11], 남아프리카 공화국 집권 ANC는 조급해하며 양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하였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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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국은 1799년 케이프타운에 미국 영사관이 개설된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공식적으로 진출해 있다. 미국 대사관은 프리토리아에 위치하며, 총영사관은 요하네스버그, 더반, 케이프타운에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미국은 또한 많은 비정부적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선교사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오랜 활동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인들 (특히 ANC 지도부)은 미국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으로부터 받은 지원과 유대를 인정하기도 한다.[13]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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