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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가말레야
소련 의사, 미생물학자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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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표도로비치 가말레야(러시아어: Никола́й Фёдорович Гамале́я; 1859년 17 February[율리우스력 5 February][1] – 1949년 3월 29일[2])는 자포로자 코자크 혈통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소련의 의사이자 과학자로, 미생물학 및 백신 연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3][4]
전기
요약
관점
가말레야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오데사에서 보로디노 전투에 참전했던 퇴역 장교의 가족으로 태어났다.[1] 그는 1880년에 오데사의 노보로시스키 대학교(현재 오데사 대학교)를 졸업하고, 188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군사 의학 아카데미(현재 S.M. 키로프 군사 의학 아카데미)를 졸업했다.[5] 그 후 그는 고향 오데사에서 존경받는 병원 의사가 되었다.
가말레야는 1886년에 프랑스에 있는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실에서 일했다. 귀국 후 파스퇴르의 모델을 따라 일리야 메치니코프와 함께 광견병 예방접종 연구와 우역 및 콜레라 퇴치, 결핵 진단을 위한 가래 (의학), 탄저 백신 제조 연구를 위한 오데사 세균학 연구소를 조직했다.[6] 오데사 세균학 연구소는 러시아 최초의 세균학 관측소가 되었다.[7]
열악한 시설과 소수의 직원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광견병 백신이 가장 효과적인 조건을 알아낼 수 있었다.[6] 콜레라 백신에 사멸된 간균강을 사용하는 가말레야의 제안은 나중에 광범위하게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6] 유사한 역들이 곧 키이우 (1886), 예카테리노슬라프 (1897), 체르니히우 (1897)에 설립되었다.[8]
콜레라의 원인학에 대한 1892년 박사 학위 논문을 방어한 후 (1893년 출판), 가말레야는 1896년부터 1908년까지 오데사 세균학 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했다. 1898년에 전염성 "효소"에 의한 탄저균 박테리아의 용해 (생물학)에 대해 보고하면서, 가말레야는 박테리아를 파괴하는 살균소로 알려진 항체를 발견했다.[9]
가말레야는 오데사와 러시아 남부에서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 쥐를 박멸하는 공중 보건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이목 (동물)이 발진티푸스의 매개체임을 지적했다.[10] 1910년부터 1913년까지 가말레야는 잡지 'Gigiena i sanitariya'(위생 및 위생)를 편집했다.[9][11]
붉은 군대를 위한 천연두 백신 공급 및 배포를 조직하는 것을 포함한 가말레야의 후기 연구는 소련에서 천연두를 궁극적으로 박멸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루었다.[12]
세균학에 관한 3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쓴 가말레야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13]와 소련 의학 아카데미[14]의 회원이었다. 그는 또한 전연방 미생물학자, 역학자, 감염병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높이 평가받는 가말레야의 국가 훈장으로는 두 개의 레닌 훈장, 노동적기훈장, 그리고 1943년 국가 스탈린상이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 및 미생물학 센터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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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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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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