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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프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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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프 기습(영어: Dieppe Raid)은 1942년 영국이 프랑스 북부 디에프에 상륙하려고 했던 작전이다. 주빌리 작전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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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42년 8월 영국군과 연합군은 방어망을 교란하기 위한 코만도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소련군에게 영국과 미국에 좀 더 과감히 독일과 싸울 것을 요구하는 소련을 무마할 정치적 사건도 필요했다. 그리고 독일 공군력 악화라는 명분도 있었다. 그래서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디에프에 상륙할 계획을 했다. 당시 영국군은 중장갑전차인 처칠 전차를 해안가 벙커에 공격을 하면 벙커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개
8월 19일 새벽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코만도 부대를 상륙시켰다. 우익의 코만도 부대는 성공적으로 상륙하였으나 나머지 병력들이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었고, 나중에 투입둰 전차도 대전차 장애물 때문에 진격을 못하였다. 결국 디에프 시내만 점령하고 퇴각하였는데 결과는 참담하였다. 6090명 중 1027명이 전사했고 2340명이 독일군의 포로가 됐을 정도다. 항공기도 영국 공군이 119대를 잃는 동안 독일 공군은 46대를 잃어 적의 공군력 약화라는 목표도 완전히 실패했다.[출처 필요]
평가
맥아더 장군은 "장사 상륙작전의 실패가 인천 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장사 상륙작전 처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은 2년 전 주빌리 작전의 실패에서의 교훈으로 가능했다.[1]
디에프는 독일 육군 제302고수방어사단 예하의 2500여 명으로 구성된 제571연대가 방어하고 있었다. 영국과 캐나다는 디에프의 항구를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한다는 목표로 '주빌리 작전'에 6,100명의 병력을 투입해 맹렬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주빌리 작전은 실패했으며, 영국군과 캐나다군을 합쳐 4,131명의 병사가 죽거나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2]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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