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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브 쿠마르 네팔
네팔의 제34대 총리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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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브 쿠마르 네팔(네팔어: माधव कुमार नेपाल, 1953년 3월 6일~)은 네팔의 정치인으로, 전 네팔 총리이다. 그는 2009년 5월 25일부터 2011년 2월 6일까지 총리로 재임하였다.[1]
그는 이전에 만 모한 아디카리 내각에서 부총리와 외교부, 국방부 등 주요 부처를 맡아 재직하였다. 또한 그는 CPN (UML)에서 15년간 집행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2]
2021년 8월 18일부터는 CPN (UML) 내의 당 대표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의 오만과 독점 문제를 이유로 분당되어 창당된 신당, 네팔 공산당 (통합 사회주의)의 당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3] 마다브 쿠마르 네팔은 세계 인도주의 단체로부터 "인류 후원자"라는 명예 칭호를 수여받았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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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다브 쿠마르 네팔은 브라만 가문에서 망갈 쿠마르와 두르가데비 우파디야야 사이에서 태어났다.[6][7] 1973년 트리부반 대학교에서 상학을 전공하여 졸업했으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은행과 공직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두 명의 형제, 비노드 쿠마르 우파디야야와 사로지 쿠마르 우파디야야, 세 명의 자매, 칼리카 반다리, 인디라 뉘파네, 바수다 포카렐을 두고 있다.
정칙 경력
과도기
2008년 4월 12일, 네팔은 2008년 제헌의회 선거에서 마오주의 후보 자쿠 프라사드 수베디에게 카트만두 2구 의석을 내준 후[8] CPN (UML) 총사무총장직에서 사임했다.[9] 수베디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후보였다.[10] 네팔은 또한 라우타하트 6구에서 마오주의 후보 데벤드라 파텔에게 패배했다.[11] 이후 그는 2013년 제2차 제헌의회 선거에서 카트만두 2구와 라우타하트 1구 의석을 모두 차지했으며, 최종적으로 라우타하트 1구를 선택했다.[12] 그는 2017년 총선에서 카트만두 2구 의석을 다시 14,000표 차이로 승리했다.[13]
2008년 6월, CPN (UML)은 네팔을 공화국 선언 이후 네팔 최초의 대통령으로 추천할 것을 제안했으나, 집권 네팔 공산당 (마오주의 센터)와의 의견 불일치로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14]
총리직

그는 2009년 5월 25일, 전임자 프라찬다가 군 참모총장 해임을 둘러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사임한 후 제34대 네팔 총리가 되었다.[15]
네팔은 이후 2010년 6월 30일, 총리직에서 사임하였는데, 이는 정부의 교착 상태를 해소하고 야당이 요구한 국민 합의 내각 구성을 위한 길을 열기 위한 조치였다.[16][17]
분당 및 창당
네팔은 네팔 공산당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과 네팔 공산당 (마오주의 센터) 간 합당을 해산하라는 대법원 결정 이후 네팔 공산당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복귀하였다. 2021년 8월 18일부터 그는 당 대표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의 오만과 독점 문제를 이유로 네팔 공산당 (통합 사회주의)에서 분당하여 창당된 신당, CPN(통합 사회주의)의 당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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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그는 가야트리 아차랴와 결혼하였으며, 아들 소라브 네팔과 딸 수만 네팔을 두고 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힌두인들의 기독교 전환을 장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나, 그는 공개적으로 이를 부인하며 기독교와의 연관이나 자국 내 선교 활동 확장에 관여한 적이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6][18]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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