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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로 군발지진
일본 나가노현에서 발생한 1965~1970년의 군발지진 현상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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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로 군발지진(일본어: 松代群発地震 마쓰다이군파쓰지신[*][1])은 일본 나가노현 하니시나군 마쓰시로정(현 나가노시의 일부) 미나카미산 일대에서 1965~1970년, 즉 무려 5년에 걸쳐서 발생한 군발지진이다.[2]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고, 엽기적으로 발생 수가 많은 군발지진은 찾아보기 힘들다.[3] 군발지진의 종합적인 에너지 (지진 규모)는 M6.4에 해당한다.[4][5]

지진
요약
관점
지진의 진원은 미나카미산 일대에 집중되었다. 총 지진 횟수는 71만 1,341회로 이 중 유감 지진은 6만 2,826회(진도 5 9회, 진도 4 48회, 진도 3 413회, 진도 2 4,596회, 진도 1 5만 6,253회)를 기록했다. 진원 깊이 7 km보다 얕은 지진(일본 기상청 지진정보에서는 "진원 깊이 매우 얕음"으로 표시됨)지진이 대부분이며 군발 지진 전체의 에너지는 M6.4에 해당한다. 지각 변동이 가장 컸던 곳에서는 이 지진 활동 전후로 약 1 m 융기했으며, 융기 영역의 지름은 약 10 km에 달했다. 또한 인근에서 "마쓰시로 단층"이 발견되었다. 한편 미소지진 감지 능력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에 따라 예상되는 횟수의 미소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6]
원인
발생 당시에는 메커니즘이 불명확했으며, 지진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다.
- 지하수의 용출량이 많다는 점(약 107 m3)에 따라 물 분출설이 있다. 이 물 분출설은 "지하 깊은 곳의 고압 지하수가 균열을 따라 상승·확산하는 과정에서 암석의 파괴 강도를 낮추어 지진을 일으킨다"는 원리이다. 또한 이 물은 상부 지각 내에 존재하던 것뿐만 아니라 상부 맨틀 부근을 기원하는 물임이 이후의 헬륨 동위원소비 분석 기술의 진보로 밝혀졌다.[7][8]
- 지하 용암의 상승이 관련되어 있으며, 용암 상승에 따라 가열된 암석이 팽창하여 지진이 발생했다고 추정된다. 관측 결과 3곳의 마그마굄 존재가 확인되었다.[9]
- 마그마가 관입했다는 설도 있으나, 지자기 관측 데이터로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10]
이후 관측 체계의 정비와 연구를 통해 현재는 "수분화" 모델이 정식으로 자리잡았다.[11] '수분화'라는 용어는 군발지진 당시 동경대 지진연구소에 재직 중이었고 실제 현지 조사를 수행한 나카무라 가즈아키가 명명했다.[12]
수분화 모델은 깊이 수~수십 km의 대수층에 존재하는 고압의 지하수가 상부 암반에 침입·파쇄되면서 지진을 유발한다는 이론이다. 또한 파쇄가 진행되면서 이 지하수가 지표로 분출해 액상화나 대량의 용출수를 일으켰다. 이렇게 수압에 의한 암반 파괴가 장기간·연쇄적으로 발생함으로써 장기적인 군발 지진이 발생했다. 이러한 모델은 현장에서 관측된 피해와도 일치했다. 앞서 언급한 나카무라의 조사에 따르면, 분출된 지하수는 이 지역의 얕은 지하수나 온천 성분과는 달리 염화칼슘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11]
지질학적 환경
이번 군발지진의 진앙인 마쓰시로는 포사 마그나의 중앙부로 중앙 융기대의 서북쪽 가장자리이자 이토이가와-시즈오카 구조선와 가까이 있다. 마이오세 후기 이후 침강하고 있는 나가노 분지 및 미우치 구릉과는 다른 지질구를 형성하며, 상대적으로 융기하고 있는 지역이다. 군발지진 수 년 후 실시된 인공지진 조사에서 미우치 구릉과 중앙 융기대의 경계로 추정되는 구조가 지하에서 발견되었으나, 군발 지진은 이 경계를 넘어선 미우치 구릉 내부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10]
1967년에는 인근 중력 분포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미나카미산 부근에는 저중력 영역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13] 지하는 가로 1,500 m, 세로 800 m, 높이 200 m의 마그마굄에서 유래했다고 보이는 큰 빈 공간도 발견되었다.[14] 시추 조사에 따르면 미나카미산 용암은 150 m 정도의 두께를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그 아래에서 호수 퇴적물이 발견되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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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활동
요약
관점
마쓰시로 군발지진은 진원역의 확장에 따라 5개의 활동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중앙 융기대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발생하던 지진이 남서-북동 방향으로 진원을 확대하면서 전체적인 활동은 점차 감소해 갔다.
제1활동기
1965년 8월~1966년 2월까지의 기간이다.
진원은 미나카미산을 중심으로 한 반경 5 km 이내에 집중되었다. 1965년 8월 3일 오후 12시 19분, 기상청 지진관측소의 고감도 지진계는 진도 0의 극히 미세한 지진동을 관측했다. 8월 7일에는 첫 유감 지진이 발생했다. 8월 17일에는 유감, 무감을 합쳐 무려 283회의 지진을 관측했다. 10월 1일 오후 5시 27분에는 진도 3의 지진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10월 9일 일본 기상청은 최초의 '지진 예보'를 발표했다. 11월 22일부터 23일에 걸쳐 진도 4 지진이 2회 발생했다. 무감 지진을 포함하면 하루 2,000회를 돌파했다.[16]
제2활동기
1966년 3월~7월까지의 기간이다.
진원지는 북동, 남서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1966년 1월 23일 오후 8시 15분, 최초의 진도 5 지진이 기록되었다. 1월 27일에는 지진 총 횟수가 10만 회를 넘어섰다. 이 지진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지진으로 주택 일부 파손 17채, 묘비 붕괴 31건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4월 5일에는 최대 규모인 M5.4(진도 5) 지진이 발생했다. 또한 4월 17일에는 무감 지진 6780회, 유감 지진 585회(약 2분에 1회)가 관측되었으며 이 중 진도 5가 3회, 진도 4가 3회였다. 가옥 파손에 따른 부상자도 발생했다.[17]
제3활동기
1966년 8월~12월까지의 기간이다.
지진 활동의 절정기로 진원 지역이 더욱 확대되었다. 초기의 가미카미산 부근에서 스자카시, 가와나카섬(나가노시), 고쇼쿠시(현 지쿠마시), 사나다정(현 우에다시) 일대까지 지진이 발생했다. 8월 24일에는 지진 총 발생 횟수가 50만 회를 넘어섰다. 미나카미산 부근의 지반 균열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총 용출량은 약 1,000만 m3로 추정된다. 이 용출 현상 때문에 9월 17일에는 미나카미산 남쪽에 있는 마키우치 지구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여 가옥 11채가 붕괴되었다. 한편, 도쿄대학 지진연구소 연구진 등이 산사태를 예측했기 때문에 주민과 가축은 이미 대피한 상태였으며 무사했다.
제4활동기
1967년 1월~5월까지의 기간이다.
진원역은 더욱 동북쪽(다카야마촌이나 스자카시), 남서쪽 방향(사카이촌)으로 확장되었으며 대신 미나카미산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의 활동은 감소했다. 지진 횟수는 급감하여 1년간 2,351회였다.
제5활동기
1967년 6월~1970년 6월까지의 기간이다.
지진 활동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1년간 관측된 지진 횟수는 1968년 745회, 1969년 388회, 1970년 201회였다. 1969년 5월 31일에는 지진 총 횟수가 70만 회를 넘어섰다. 1970년 6월 5일 나가노현이 군발 지진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도 하루에 한 번 이상 무감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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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진 목록
아래는 군발지진 중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기준 최대진도 5 이상을 관측한 지진이다.[18]
타 지진과의 연관성
1930년 6월 1일 이바라키현 북부 지진(M6.5), 1943년 8월 12일 다지마 지진(M6.2), 1949년 12월 26일 이마이치 지진(M6.2, M6.4)이 마쓰시로 군발지진 발생에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가 있다.[19] 또한 1964년 M6.9 오가반도 해역 지진, M7.5 니가타 지진과의 연관성도 지적하는 연구가 있다.[20] 다른 연구에서는 마쓰시로 군발 지진에 앞서 동해 동연 변동대에서 발생했던 아오모리현 서쪽 해역 지진(1964년 5월, M6.9)과 니가타 지진(1964년 6월, M7.5)의 영향을 받아 응력이 높아져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연구가 있다.[21]
영향
피해
도로의 갈라짐과 주택 손상, 액상화, 지하수 분출 등을 중심으로 총 피해는 부상자 15명, 가옥 완전 붕괴 10채, 반파 4채, 산사태 64건에 달했다. 주민 중에는 신경쇠약을 호소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또한 앞서 언급한 염화칼슘을 많이 함유한 지하수의 분출로 인해 논밭에 염해가 발생했다.
지진 예측
진앙 내에서 각종 관측과 연구가 진행된 결과, 일본의 지진 예지 연구는 크게 진전되었다. 또한 호쿠신 지역 지각 활동 정보 연락회가 모델이 되어 1968년 4월, 국토지리원 산하에 사무국을 둔 지진예지연락회가 발족했다.
1967년 2월 8일, 마쓰시로정 지진관측소 내에 마쓰시로 지진 센터가 설치되었다.
같이 보기
- 일본의 지진 목록
- 나가노 분지
- 미나카미산
- 마쓰시로 지진관측소
- 마쓰시로 온천
각주
외부 링크
Wikiwand -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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