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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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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閔丙德, 일본식 이름: 鉢山丙德하치야마 헤이토쿠, 1894년 10월 11일 ~ 1957년 11월 6일)은 일제강점기의 황해도 지역 유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낸 기업인이다. 본관은 여흥이다.
생애
황해도 재령군 출신이다.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에 종사하면서 기업체를 운영했다. 주요 사업 분야는 재령택시와 재령트럭 등 운수업이었다.
황해도 도평의회에서 민선 평의회원을 지냈으며, 지역의 농회 평의원이나 면협의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재령 지역의 유력자로 활동했다. 재령군을 포함하여 인근 안악군과 신천군에서 수리조합평의원도 지냈다.
재령의 기독교 계열 신교육 기관인 명신학교 설립자이기도 하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는 353명의 공로자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1][2]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전쟁 지원을 위해 결성된 흥아보국단 황해도 지역 위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으로도 활동했다.[3]
일제 패망 후에 월남하여 대한민국 영역에 머물다가, 1949년에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발효되면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반민특위 활동이 무산되면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이후 기업 경영에 종사하여 전남방직 부사장을 맡는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1954년까지 생존해 있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부문에 모두 들어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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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참고자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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