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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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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密陽孫氏)는 경상남도 밀양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손순(孫順)은 신라 흥덕왕 때의 인물로 효심이 깊어 왕에게 알려져 신라의 국효(國孝)로 일컬어졌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기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한(辰韓) 육촌(六村) 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村長) 구례마(俱禮馬)가 처음 이산(伊山)에 내려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원조(元祖)가 되었다고 한다.
《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는 기원전 57년 육부(六部)가 알천(閼川)에 모여 상의하여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임금으로 모시고 금성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한다.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신라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서기 32년)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고치고 손씨(孫氏)로 사성하였다고 한다.
역사
시조 손순(孫順)은 신라 흥덕왕 때 경북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835년(신라 흥덕왕 10년) 손순(孫順)의 효행이 왕에게 알려져 신라의 국효(國孝)로 일컬어졌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삼국유사》에는 손순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파묻으려 한 이야기가 나온다.[1]
손순의 장손자 손익감(孫翼減)도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손순의 7세손인 중흥조(中興祖) 손긍훈(孫兢訓)이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져서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밀양 손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하였다.
분파
- 좌사전공파(左師傅公派)
- 전농시사공파(典農寺事公派)
-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 군사공영파(郡事公榮派)
- 부사공파(府使公派)
- 오곡공파(梧谷公派)
- 오한공파(??公派)
- 국자진사공파(國子進士公派)
- 명천공파(明川公派)
- 현감공파(縣監公派)
- 군수공파(郡守公派)
- 목사공파(牧使公派)
- 기로공파(耆老公派)
- 정승공파(政丞公派)
- 사부공파(師傅公派)
- 첨정공파(僉正公派)
- 충의공파(??公派)
- 돈암공파(遯巖公派)
- 계륜공파(??公派)
- 후능참봉공파(??公派)
- 팔룡공파(八龍公派)
항렬자
- 대동항렬
인구
- 1985년 58,369가구 243,473명
- 2000년 85,333가구 274,700명
- 2015년 306,895명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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