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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페로프

러시아의 화가 (1834~1882)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바실리 페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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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그리고레비치 페로프(러시아어: Василий Григорьевич Перов, 1834년 1월 2일 [O.S. 1833년 12월 21일]~1882년 6월 10일 [O.S. 5월 29일])는 러시아의 화가로, 러시아 사실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이동파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1]

간략 정보 바실리 페로프, 신상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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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및 경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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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페로프는 1834년 1월 2일(구력 1833년 12월 21일) 러시아 제국 토볼스크현토볼스크에서 바실리 그리고레비치 바실례프(러시아어: Василий Григорьевич Васильев)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독일계발트 귀족 가문인 우라델 출신의 현지 검사 그레고르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폰 크뤼데네르 남작과 토볼스크 출신의 러시아 여성 아쿨리나 이바노바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부모는 그의 출생 후 곧 결혼했지만, 법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남작 작위를 물려받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대부의 성인 바실례프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다. 이후 그는 어린 시절 필기체를 가르쳐 준 교사가 붙여준 별명, ‘페로프’(러시아어로 ‘페로’는 깃펜이라는 뜻)로 자신의 성을 바꾸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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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의 설교》, 1861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페로프는 아르자마스 의 학교 과정을 마친 뒤, 아르자마스에 있던 알렉산드르 스투핀 미술학교로 옮겼다. 1853년에는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 학교에 입학했으며, 이곳에서 여러 저명한 예술가들에게 배웠다.[3] 1856년 그는 소년의 머리를 그린 스케치로 러시아 제국 예술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마이너 은메달을 받았다. 이후 아카데미는 그에게 여러 상을 수여했는데, 1857년에는 《농촌 경찰 조사관》으로 메이저 은메달, 《무덤가의 풍경》과 《사무 부서장의 아들이 처음으로 1등 계급을 받은 날》로 마이너 금메달, 1861년에는 《마을에서의 설교》로 메이저 금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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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의 휴식》, 1871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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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카》, 1866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1862년, 금메달과 함께 주어진 국비 해외 연수 자격을 받은 페로프는 서유럽으로 떠나 독일의 여러 도시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이 시기 그는 《조각상 장수》, 《사보이아 소년》, 《파리의 손풍금 연주자》, 《음악가와 구경꾼들》, 《파리의 넝마주이》 등 유럽의 거리 생활을 묘사한 그림들을 제작했다. 일찍이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는 1865년부터 1871년 사이에 《분수대 앞의 줄》, 《수도원에서의 식사》, 《마지막 여정》, 《트로이카》, 《사순절 월요일》, 《상인 집에 새 가정교사가 도착함》, 《그림 선생님》, 《철도에서의 장면》, 《도시 관문 근처의 마지막 선술집》, 《새잡이》, 《어부》, 《사냥꾼들의 휴식》 등 자신의 대표작을 그렸다. 1866년 그는 아카데미 회원 칭호를 받았고, 1871년에는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 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이 시기에 페로프는 학문적 제약에 반발해 결성된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들의 협동조합인 이동파에 합류했다.

페로프는 1882년 6월 10일(구력 5월 29일), 모스크바의 쿠즈민키 마을(오늘날 쿠즈민키구)에서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모스크바의 돈스코이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1956년 소련과 2009년 러시아에선 페로프를 기리기 위한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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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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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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