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
법정동 |
행정동 |
유래[3] |
원미구 | 원미동(遠美洞) |
원미1동 |
원미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부평구 관아(현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소재)의 동헌에서 아침 해돋이 때의 산세는 그지없이 선연하고 아름다우며 해질녘 노을에 반사된 이 산의 모습이 아름다워 원미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다. 원미동은 부천시가 되기 전까지는 조종리(朝宗里), 또는 조마루라고 불렀다. |
원미2동 |
심곡동(深谷洞) |
심곡1동 |
산골이 아닌 허허벌판인 이 마을에 깊은 구지를 의미하는 심곡이 붙은 것은 본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이 지역의 고유한 명칭은 심곡1동은 벌막, 심곡2동은 진말, 심곡3동은 먹적골이다. 벌막은 벌판(坪村)의 큰 길 분기점에 마을과 주막거리가 생긴 데에서 유래한다. 진말은 비가 좀 와도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땅이 무척 질었다는 것과 동학항쟁 때 이곳에 진을 쳤다고도 하는 데에서 유래한다. 먹적골은 조선시대 牧自里 즉 牧自골로 불린 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
심곡2동 |
심곡3동 |
춘의동(春衣洞) |
춘의동 |
춘의동의 옛 이름인 표절리(表節里)는 '節'개에 경의를 '表'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예전에 춘의로 초입에 풍산 홍씨가 받은 정려문이 있었다고 한다. 표절리는 부천시 승격 때 춘의산 아래에 있어 춘의동이 되었다. 이 곳에 양짓말이 있어 '봄을 뜻하는 산(春意山)'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
도당동(陶唐洞) |
도당동 |
벽돌공장이 있었기에 도당동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하며, 당집이 있어 도당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당을 어원적으로 보면 당은 산을 뜻하고 도는 건너 또는 너머를 뜻하므로 도당은 ‘산 너머’를 이른다고 할 수도 있다. |
약대동(若大洞) |
약대동 |
시 승격 전 오정면 약대리 지역으로 약물터가 있으므로 약대라고 하였는데, 부천군 때는 약대리라고 해서 오정면에 속했다. 본래 도당동, 약대동, 내동, 삼정동이 모두 약대동이었다. |
소사동(素砂洞) |
소사동 |
소사는 '소사'로 표기하고 토박이말로 '소새(쇠)'로 읽는다. 이곳에 오래 산 촌로들은 지금도 소새(쇠)라고 말한다. 소새는 고운 모래를 일컫는다. 한편 소쇠를 추론한다면 '쇠'가 철광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이나 확증은 없다. |
역곡동(驛谷洞) |
역곡1동 |
시 승격 전 벌응절리(伐應節里) 지역이었고, 역곡이라는 지명은 옛날에 역원이 있었던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벌응절리의 유래에 대해서는 옛낱 이곳에 봉응사(蜂應寺)란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蜂은 우리 말로 '벌'이고 寺는 우리말로 절)과 왜군의 침략에 '應'하여 왜군을 쳤기(伐) 때문에 붙여진 것이란 설이 있다. |
역곡2동 |
중동(中洞) |
중동 |
시 승격 전 소사읍 중리에 속했던 넓은 평야지역이다. 지금은 중동신도시가 들어섰다. |
중1동 |
중2동 |
중3동 |
중4동 |
상동(上洞) |
상동 |
시 승격 전 소사읍 상리였으며 지금은 상동지구가 들어섰다. 평야 지역으로 동네방죽, 배락논, 쪼갈논, 갈논, 운둥군논, 돌다리논, 동정머리논, 투명배미논, 쇠밭이논, 물문개논, 세벽구덩이논, 밭뜬논, 세귀밭논, 봉초논, 덕배미, 장승백이논, 백지논, 앞자리논, 쪽다리논, 앞방죽논과 같이 논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
상1동 |
상2동 |
상3동 |
소사구 |
소사본동(素砂本洞) |
소사본동 |
↑ 참고 |
소사본1동 |
심곡본동(深谷本洞) |
심곡본동 |
↑ 참고 |
심곡본1동 |
범박동(範朴洞) |
범박동 |
범박골은 범씨와 죽산박씨가 정작하여 붙여진 명칭이라는 설과 마을 형태 때문에 호랑이 (범)와 관련하여 붙여진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범과 박씨가 연결되어 있는 박씨는 부천에 정착한 죽산 박씨이다. |
옥길동 |
괴안동(槐安洞) |
괴안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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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3동 |
송내동(松內洞) |
송내1동 |
경인국도와 경인전철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시 승격 직후에도 언덕산과 이 마을 초입에 해묵은 소나무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소나무로 둘러싸인 안동네, 즉 ‘솔안말’이었다. 송내동은 여기에서 연유하였다. |
송내2동 |
옥길동(玉吉洞) |
옥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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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동(桂壽洞) |
범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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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구 |
오정동(梧亭洞) |
오정동 |
대장동을 포함하는 오정동은 김포평야와 부평평야에 맞닿은 평야 지역이다. 굴포천의 범람원으로 예전 갈대밭이었다가 1925년 한강수리조합이 탄생하면서 논으로 개간되어 주곡생산지가 되었다. 제주 고씨, 여흥 민씨 등의 씨족 마을이 있었고 한자로 오동나무 '梧'에 정자 '亭'으로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여월동(如月洞) |
성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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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鵲洞) |
작동은 까치울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까치는 작다는 뜻도 있으므로 작고 아늑한 마을이란 뜻이다. |
원종동(遠宗洞) |
원종1동 |
시 승격 전 ‘먼마루’라고 불렸다. 춘의동 당아래에서 내려다 볼 때 '멀리 둥그렇게 산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멧마루라고도 부른다. 멧는 산을 뜻하고 마루는 으뜸, 또는 등성이를 뜻한다. 그러므로 원종동은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원종2동 |
성곡동 |
고강동(古康洞) |
고강본동 |
고강동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고리울에서 ‘고’, 강장골에서 ‘강’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강동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가 있다. |
고강1동 |
대장동(大壯洞) |
오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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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동(三井洞) |
신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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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內洞) |
내동은 춘의산 북녘으로 이어진 능선 끝과 예전 늪지대였던 삼정동, 대장동, 오정동 일대의 중간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삼정동은 약 300 여 년 전 밀양 박씨가 마을을 이루어 형성되었다. 현재는 경인고속도로의 내동 인터체인지가 만들어지면서 공업지역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