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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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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조각(영어: social sculpture)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가 1970년대에 정식화한 예술 개념으로, ‘‘사회의 형성과 변화를 향한 인간의 창조적 활동 전체’’를 조각적 실천으로 확장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1][2]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구호와 함께, 사고·언어·교육·정치·경제 등 사회적 영역의 창의적 조직을 예술의 범주로 확장했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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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사회적 조각은 전통적 의미의 조각을 물질 재료의 조형에서 해방해, 인간 활동과 사회적 상호작용, 제도 개입, 토론과 교육 같은 비물질적 과정까지 포괄한다.[1] 보이스는 예술과 삶을 하나로 보는 ‘‘확장된 예술 개념’’을 통해 예술이 사회·정치적 담론을 조직하는 매개라고 보았고, 개인의 창의적 역량을 사회 구조의 변형에 동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5]보이스의 논의는 한국어권에서도 ‘모든 사람이 창의력을 발휘해 사회 변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로 소개되며, 그의 ‘따스한 조각’·‘온기이론’이 삶과 예술의 통합주의 맥락에서 사회적 조각과 함께 해설된다.[6]
형성 배경
보이스의 교수 활동과 퍼포먼스·행동주의는 1960~70년대 독일의 학생운동, 생태·직접민주주의 담론과 맞물려 전개되었다.[7][8]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 조각은 개념미술·행위 예술과 교차하며, 예술의 역할을 제도 밖 공적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4]
주요 사례
- 〈7000그루의 참나무〉(7000 Oaks, 1982–1987)
1982년 '도큐멘타 7'에서 시작된 이 장기 프로젝트는 카셀 시 전역에 7,000그루의 참나무를 심고, 각 나무 옆에 약 4피트 높이의 현무암 기둥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최종 나무는 1987년 도쿠멘타 8 개막에 맞춰 심어졌다.[9][10][11] 보이스는 도시 재생과 시민 참여를 결합한 이 프로젝트를 사회적 조각의 대표적 실천으로 제시했다.[9]
영향과 비평
사회적 조각은 이후 '참여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고, 예술과 정치·공공영역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이론적 논쟁을 촉발했다. 클레어 비숍은 참여예술의 미학적·정치적 함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사회적 실천 전반의 기준을 재토의했고,[12] 그랜트 H. 케스터는 대화·협업이 생성하는 공론장의 미학을 통해 이러한 실천의 의의를 해석했다. [13]도큐멘타 아르히프는 ‘Kassel-21/Social Sculpture Lab’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조각을 동시대 공공 실천으로 재해석·실험하고 있다.[14]
한국의 수용
1991년 3월 1일부터 3월 2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요셉 보이스’ 전(부제: Drawings, Objects and Prints)이 열려 드로잉·오브제·판화 등 109점이 소개됐다.[15] 전시는 독일해외교류처(IFA)와 주한 독일문화원의 지원으로 개최됐으며, 도록의 서문과 해설은 ‘사회적 조각’과 ‘확장된 예술 개념’을 국내 맥락에서 소개했다.[15] 국내 미술 전문 매체는 이후 보이스 관련 서적·전시 소개를 통해 사회적 조각의 취지(“모든 사람은 예술가”)와 생태·교육적 맥락을 대중적으로 해설해 왔다.[16]
갤러리
- 도큐멘타7(1982) 당시 프리데리치아눔 전경. 보이스의 현무암 스텔레가 보인다.
- 뒤셀도르프의 오크+현무암 스텔레(〈7000그루의 참나무〉 연계 설치).
- 영국 요크의 '7000 Oaks' 확장 식재 사례(스텔레와 기호 석재).
- 보이스의 Free International University 관련 자료(사회적 조각 개념과 연계).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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