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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윤씨

조선 인종의 후궁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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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윤씨(淑嬪 尹氏, ? ~ 1595년 이후)는 조선 인종후궁이다.

간략 정보 숙빈 윤씨淑嬪 尹氏, 출생일 ...

생애

조선의 제12대 임금 인종의 후궁으로, 아버지는 돈녕도정을 지낸 윤원량이고, 어머니는 순천 장씨이다.[1] 윤원량은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의 오빠로, 숙빈 윤씨는 문정왕후의 친조카가 된다.[2] 본관은 파평이다.

인종이 세자이던 1536년(중종 31년) 음력 2월 세자궁의 후궁을 선발하기 위해 윤씨에게도 금혼령이 내려졌으며[3], 1537년(중종 32년) 음력 11월에 양제(良娣)로 선발되어 입궁하는 것이 논의되었다. 금혼령이 내려졌을 때부터 일부에서는 윤씨는 세자의 모후의 조카이므로 후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윤은보 등은 한명회의 두 딸이 나란히 예종장순왕후성종공혜왕후로 책봉된 예를 들면서 문제가 없다고 하여 입궁하게 되었다.[4] 한편 1543년(중종 38년) 인종의 전각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를 두고 윤씨의 친정에서 저지른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5]

이후 언제 진봉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선조 28년)에는 이미 숙빈(淑嬪)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 때 남양[주 1]에서 윤씨에게 음식물을 지급토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6], 윤씨는 그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소생은 없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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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명종인순왕후가 승하하자, 1577년(선조 10년)경 윤씨는 비구니 지명과 함께 불화 《지장보살본원경변상도》를 발원하였다. 윤씨가 발원한 불화는 자수궁정사에 봉안되었으며, 현재는 일본 교토부 지온인에 소장되어 있다.[7]
  • 2002년 9월 파평 윤씨 종중의 산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에는 적어도 1566년(명종 22년) 이전에 작성된 윤씨의 언문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편지는 극존칭으로 작성되었으며, 인종과 오빠 윤소의 죽음에 대해 쓴 것이다. 이 편지는 한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2][8]

가족 관계

본가와 외가
  • 조부 : 파산부원군 증 영의정 정평공 윤지임(坡山府院君 贈 領議政 靖平公 尹之任, 1475~1534)
  • 조모 : 전성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 李氏, 1475~1511)
    • 아버지 : 돈녕도정 윤원량(敦寧都正 尹元亮, 1495~1569)
    • 백부 : 장예원사평 윤원개(掌隸院司評 尹元凱, 생몰년 미상)
    • 숙부 : 호조참판 윤원필(戶曹參判 尹元弼, 1496~1547)
    • 숙부 : 돈녕부도정 윤원로(敦寧府都正 尹元老, 미상~1547)
    • 숙부 : 영의정 서원부원군 윤원형(領議政 瑞原府院君 尹元衡, 1509?~1566)
    • 고모 :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1565)
      • 고종사촌(시동생) : 제13대 명종(明宗, 1534~1567, 재위 1545~1567)
  • 외조부 : 장일취(張日就, 생몰년 미상)
  • 외조모 : 미상
    • 어머니 : 정부인 순천 장씨(貞夫人 順天 張氏, 생몰년 미상)
      • 오빠 : 윤소(尹紹, 생몰년 미상)[9]
시가
  • 시조부 : 제9대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
  • 시조모 :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1462~1530)
    • 시아버지 :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
    • 시어머니 :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1515)
      • 남편 : 제12대 인종(仁宗, 1515~1545, 재위:1544~1545)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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