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욧츠노구치

일본 에도 막부가 관리했던 4개의 교역창을 가리키는 일본 역사용어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욧츠노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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욧츠노구치(일본어: 四つの口)는 근세 일본(에도 시대) 시기 일본이 외국과의 교역을 위해 열어둔 4개의 창구를 가리키는 일본 역사학계의 용어로, 구체적으로는 중국네덜란드와의 교역을 맡은 "나가사키구"(長崎口), 조선과의 통신을 담당한 대마도를 부르는 "대마구"(対馬口), 류큐 왕국과의 교역을 담당한 조슈번을 부르는 "조슈구"(薩摩口), 그리고 에조치와의 교역을 담당한 "마츠야마구"(松前口)를 가리킨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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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욧츠노구치 중 세 곳이 있는 규슈 섬의 지도

1960년대 일본 역사학계는 근세 일본의 대외 정책을 외국과의 교역을 차단했다는 사코쿠를 정설로 받아들였지만, 이 시기 이후의 일본 역사학계의 연구는 에도 막부가 대외 정책을 실질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을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다.[3][4] 이를 상징하는 '욧츠노구치'라는 표현은 1981년 아라노 야스노리가 처음으로 사용했고, 2010년대부터는 일본 고등학교에서도 공식 용어로서 사용되고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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욧츠노구치의 역사와 사코쿠

사코쿠 이전

16세기 중후반

1547년 명나라와 일본이 마지막으로 감합무역을 한 뒤 양국의 교역은 중단되었지만 양국 민간인들의 교역은 감합무역이 중단된 이후에도 활발히 이루어졌다.[6] 동시에 일본 해안의 다이묘들은 유럽 각국이 교역 거점으로 삼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한편 중국의 비밀 교역집단과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해 동중국해 일대에 상업 거점을 마련했는데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왜구적상황'(倭寇的状況)이라고 불렀다.[6][2][7]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지방 다이묘들이 독립적으로 해외무역을 진행하는 한편, 포르투갈과 같은 유럽 국가들과도 교역을 시작했다.[8] 하지만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일본은 조선과 명나라와 관계가 험악해지고 교역도 중단되고 말았다.[9][10][11]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책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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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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