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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의 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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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독립 이후 잠비아의 대외 관계는 주로 남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 반식민주의 및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는데, 즉 아프리카 국민회의,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등이었다. 냉전 기간 동안 잠비아는 비동맹 운동의 일원이었다.
잠비아는 44개의 국제 기구의 회원국이며, 그중에서 유엔, 세계 무역 기구, 아프리카 연합, 영연방,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잠비아는 보츠와나, 나미비아, 짐바브웨의 경계가 만나는 지점과 관련된 국경 분쟁에 연루되어 있다. 또 다른 콩고 민주 공화국과의 분쟁은 룬친다-프웨토 월경지를 둘러싼 것이다.
각국별 대외 관계
요약
관점
아메리카
미국
케네스 카운다 대통령과 버논 음와앙가, 마크 초나, 시테케 음왈레와 같은 다른 외교관들이 이끈 잠비아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앙골라, 로디지아 (짐바브웨), 나미비아의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였다.[1]
아시아
대한민국
양국은 1990년 9월 4일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2]
인도
양국은 1965년 4월, 인도의 초대 잠비아 고등판무관 C. 크리슈나무르티가 직무를 시작하면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3]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양국은 1994년 5월 10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잠비아는 소수 지배에 맞선 투쟁 동안 아프리카 국민회의를 강력히 지지했으며, 여러 해 동안 ANC를 받아들였다. 2009년에는 잠비아로 수입된 모든 상품의 거의 52%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들어왔다.[4]
짐바브웨
양국은 1980년 4월 30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5]
전 외무장관 카빙가 음판데는 잠비아가 짐바브웨에 대해 "잠비아를 겨냥한 지속적이고 악의적인 운동"에 항의했다고 말한 바 있다.[6] 그러나 잠비아의 대통령으로 마이클 사타가 선출되면서 관계는 크게 개선되었다. 잠비아가 짐바브웨의 영국 주도의 영연방 재가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잠비아 언론에 의해 전해졌다.
탄자니아
양국은 1965년 1월 7일, 잠비아의 초대 탄자니아 고등판무관 A. M. 심불레가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면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7]
케냐
양국은 1966년 잠비아의 케냐 고등판무관으로 A. M. 심불레가 인가를 받으면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8]
유럽
영국
잠비아는 1964년 10월 17일, 영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9]
잠비아는 런던에 고등판무관을 두고 있으며, 영국은 루사카에 있는 고등판무관을 통해 잠비아에 외교 대표를 두고 있다.[10] 영국은 1911년부터 1964년까지 잠비아를 통치하였으며, 1964년 잠비아가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였다.
양국은 영연방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공통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자 관계로는 개발 파트너십[11], 이중과세 방지 협정,[12], 에너지 아프리카 파트너십 협정[13], 녹색 성장 협약,[14], 투자 협정 체결 등이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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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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