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프랑스의 로코코 화가 (1732–1806)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Remove ads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년 4월 5일 ~ 1806년 8월 22일)는 18세기 프랑스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이다.

간략 정보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신상정보 ...

역사화, 장르 회화와 시골 풍경을 주로 그린 화가였던 프라고나르는 특히 그의 대표 작품 《빗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외설적인 장르화와 연애의 풍경을 화폭에 주로 담았다.

프랑스 남부의 해안도시 그라스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0살쯤에 가족들과 파리로 이주하였던 프라고나르는 일찍이 장 시메옹 샤르댕의 공방에서 예술가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14살 때 프랑수아 부셰의 공방에 도제로 들어간다. 아직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니였던 프라고나르는 1752년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이라는 작품으로 로마 대상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로마로 떠나기 전 샤를앙드레 반 로의 지도를 받았다.

프라고나르의 후기 로코코 양식은 주목할 만한 유려함, 풍부함, 그리고 쾌락주의로 두드러진다. 앙시앵 레짐 마지막 시대의 다작의 작가들 중 한 명으로서 프라고나르는 550점 이상의 그림을 (소묘나 에칭은 포함하지 않고) 그렸고, 이 그림들 중 5점만이 날짜가 기록되어있으며 품어있는 육체 관계의 분위기와 숨겨진 에로티시즘을 전달하는 '풍속화' 회화도 있다.

Remove ads

생애

Thumb
오귀스트 메야르,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기념비≫ (1907), 그라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장갑 제조업자의 보조이던 프랑수아 프라고나르와 프랑수아즈 프티의 아들이다. 남동생 조제프가 10개월만에 죽자 그는 외동 아들로 남게 되었다. 가족이 파리로 이주하게 되자 6살에 고향 마을을 떠났다. 프라고나르가 6살이 되던 해에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파리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프라고나르는 그의 생애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1]

작품

같이 보기

참고

Loading related searches...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