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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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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은(鄭國殷, 1919년 1월 31일 ~ 1954년 2월 19일)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며 친일 공산주의 행적자이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행위를 하였고 1950년대좌익 간첩 활동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간략 정보 정국은鄭國殷, 출생 ...

생애

일제강점기일본 아사히 신문 기자를 지냈다. 이때 경기도 경찰의 끄나풀로 일했다는 혐의를 받아 광복 후인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온 바 있고,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광복회가 공동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기타 부문에 수록되어 있다. 정국은은 박흥식 등 거물급들과 함께 반민특위 활동 초기에 검거되었으며, 당시 나이는 32세로 보도되었다.

이후 연합신문동양통신의 주필을 겸임하는 등 언론계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일본을 드나들며 암약한 국제간첩 사건의 주범으로 1953년 8월 31일 체포되어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과 육군 특무부대 특무처장 장보형 육군 중령에 의하여 구속 수감되었다.[1][2] 이 사건은 한국 전쟁 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첫 간첩 사건이었다. 정국은의 혐의는 북한의 조선로동당 예하 간첩으로서 대한민국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군 관련 기밀을 빼냈고, 일부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이승만 정부의 전복을 꾀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법회의를 거쳐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2월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국은과 연루되었다는 이유로써 이미 자유당을 탈당한지 꽤 지난 양우정 등을 비롯하여 이범석조선민족청년단 계열 정치인들이 숙청되는 결과를 낳았고, 1954년 1월 정국은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발표 후에도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의혹을 사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정국은 사건 이후 족청 계열은 몰락하고 이기붕이 이승만의 뒤를 이을 2인자 자리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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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참고 자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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