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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갑
탐관오리로서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제공자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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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갑(趙秉甲, 1844년 5월 15일 ~ 1912년/1913년 5월 23일[1])은 조선 후기, 대한제국의 문신이고 부패한 탐관오리이자 동학농민운동의 원인 제공 관련자이다.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생애
조규순의 서자, 조두순의 서조카로 알려져 있다. 1863년 규장각 검서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2] 1877년 예산 현감을 시작으로, 1892년 고부 군수에 이르기까지 천안, 보성, 함양, 김해 등 고을의 수령을 거쳤다.[3]
조병갑은 민영준을 매개로 해서 민비에게 7만냥을 뇌물로 바쳐 매관매직으로 고부 군수가 되었다. 1892년 고부 군수 재직 중 관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았다. 그는 이곳의 물을 받는 논에 첫해에는 수세를 물리기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수세를 징수하였다. 이후 조병갑의 폭정에 격분한 농민들은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헐었다.[4] 그 뒤 자신의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거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창혁(전봉준의 부친)에게 곤장형을 가하여 때려죽였다.[3]
조병갑은 악행,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무고한 이를 잡아다 온갖 죄를 뒤집어씌워 보석금을 지불하게하는가 하면,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로 교환해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은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 등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동학 농민 혁명을 초래하였다. 전라도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혁명은 주변지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5]
중앙 정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그는 동학 농민 운동으로 1년여 동안 당시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 척하다가 복권되었다.[6] 그 뒤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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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 고조부 : 조영극(趙榮克)
- 증조부 : 조종철(趙宗喆, 1737 ~ ?)
- 조부 : 조진익(趙鎭翼, 1762 ~ 1825 이후)
- 조모 : 반남 박씨, 박종악의 딸
- 숙조부 : 조진정(趙鎭靖)
- 숙조부 : 조진민(趙鎭敏)
- 숙조부 : 조진강(趙鎭剛, 1775 ~ ?) - 숙증조부 조의철(趙宜喆)에게 입양.
- 숙증조부 : 조인철(趙寅喆)
- 숙증조부 : 조헌철(趙憲喆, 1742 ~ ?)
- 숙증조부 : 조의철(趙宜喆, 1745 ~ ?)
- 숙증조부 : 조우철(趙宇喆)
- 증조부 : 조종철(趙宗喆, 17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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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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