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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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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부인(智炤夫人)은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의 딸로 김유신의 두 번째 정실 부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조(智照)’라 기록돼 있고[1], 열전 김유신전에는 ‘지소(智炤)’라 기록돼 있다.[2]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김유신이 60세가 되던 해에 혼인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들 김원술이 전투에서 후퇴한 일로 남편이 아들과 일방적으로 연을 끊자, 김유신 사후에 찾아온 아들 김원술을 내치며 만나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술도 세상을 비관하며 숨어 살았다고 한다.
성덕왕 11년(712년)까지 살아 있었으며, 이때 김유신의 처를 부인으로 봉작하고 매년 곡(穀) 1천 석(김유신열전에는 남성의 조 1천 석)을 내려 주도록 하였다.
가족관계
어머니 문명왕후와 남편 김유신은 남매 관계이므로 김유신은 지소부인의 외숙이자 남편이다.
- 부왕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 신라 제 29대 왕
- 모후 : 문명왕후 김씨(文明王后 金氏)
- 남편 : 김유신(金庾信)
- 장남 : 김원술(金元述) - 관등은 소판(蘇判)
- 차남 : 김원정(金元貞) - 관등은 해간(海干)
- 삼남 : 김장이(金長耳) - 관등은 대아찬(大阿飡)
- 사남 : 김원망(金元望) - 관등은 대아찬(大阿飡)
김유신가와의 관계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는 삼광 이하 김유신의 자녀 5남 4녀가 모두 지소부인의 소생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지소부인은 태종 무열왕의 셋째 딸로 태종 무열왕 2년(655년) 김유신에게 하가하였는데, 지소와 혼인하였을 때 김유신의 나이는 이미 예순이 넘은 상태였고, 혼인한지 18년만인 673년에 79세로 사망하였다. 때문에 삼광 이하 자녀들을 지소의 소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유신의 자녀들을 지소의 소생인 것처럼 변개한 것은 후손에 대한 예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소가 무열왕의 적실 소생이자 김유신의 본처이고, 삼광 등은 지소의 소생이라고 하면 이들은 외가 쪽으로 무열왕의 후예가 되므로 그만큼 위상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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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부인이 등장하는 작품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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