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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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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崔俊蓆, 1983년 2월 15일 ~ )은 전 ABL 리그 질롱 코리아내야수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 대구를[1] 떠나 타지(포항 부산 서울)에서 생활했다.

간략 정보 기본 정보, 선수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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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시절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01년에 2차 6라운드 49순위에 지명을 받아 포수로 입단하였다. 하지만 수비 실력이 떨어져 당시 주전 포수 최기문의 그늘을 걷어내지 못했고[2] 급기야 최기문이 병역과 건강 문제로[3] 팀 전력에서 이탈한 뒤에는 강민호의 급성장으로 설 자리를 잃었으며 2006년 1루수로 전향했지만 같은 포지션의[4] 입단 동기 이대호에게 밀려 백업으로만 활동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

최경환, 이승준을 상대로 김진수와 함께 2006년 5월 17일[5] 트레이드됐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이승준2006년, 최경환2007년을 끝으로 방출당해 롯데 자이언츠에게는 실패한 트레이드가 됐고[6], 최경환KIA 타이거즈로 옮겨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이승준은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적 후 팀의 장타력에 기여했고 김진수는 1군으로 올라올 때마다 굵고 짧게 활약하여 인상을 남겼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12년 말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아 무릎 재활 치료를 했다. 2013년 시즌 중에는 오재일과의 1루 주전 경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2013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강윤구를 상대로 결승 솔로 홈런을 기록해 68표 중 35표를 얻으면서 준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이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도 홈런을 쳐 내며 포스트시즌에서만 6홈런을 기록했고, 2001년 타이론 우즈와 타이 기록을 이뤄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했지만 팀이 7차전에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3년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팀과의 협상이 결렬됐고, 4년 총액 35억원(계약금 15억, 연봉 4억, 옵션 4억)의 조건으로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친정 팀에 복귀했다.[7]

롯데 자이언츠 복귀

2014년에 복귀하였다. 2015년에 주장으로 활동했는데 2014년 7월 12일 광주 기아전에서 선발 포수로 나선 용덕한과 데드볼을 머리에 맞아 부상당한 강민호가 교체되며 포수가 엔트리에서 소진되자[8] 9회말부터 포수 마스크를 썼다.

NC 다이노스 시절

2018년에 사인 앤 트레이드(무상 트레이드)로 이적하였다.[9] 그러나 2018년 10월 13일에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고 방출됐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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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프로야구 시절

질롱 코리아 시절

2018년 11월 20일에 입단하였다.[11]

에피소드

  • 2005년 5월 26일 LG 트윈스전에서 투수 신윤호를 상대로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쳐 냈는데, 이 홈런은 롯데 자이언츠가 8점차 열세를 뒤집은 홈런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 날 경기에서 선발 투수였던 장원준이 조기 강판당하며 4회까지 0:8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 중반에 선발 투수 장문석을 상대로 8득점을 하며 동점이 됐고, 이후 롯데 자이언츠 불펜진이 추가 실점을 해 LG 트윈스가 2점을 추가했으나, 경기 말에 손인호의 적시타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고, 계속된 찬스에서 그의 2점 홈런으로 대역전승을 연출했다. 이 경기는 그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돌풍이 절정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경기였다. 야구 팬들은 이날 롯데 자이언츠의 대역전승을 두고 '5.26 대첩'이라고 불렀다.
  • 2013년 9월 2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대타로 나와 3루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파울을 날렸다. 그는 타격 뒤 방망이를 집어던졌는데, 미국 언론들은 이례적으로 이를 성급한 홈런 세리머니라고 방송했다.[12]

출신 학교

통산 기록

자세한 정보 연도, 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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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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