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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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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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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鰍魚湯)은 미꾸라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이다. 미꾸라지를 푹 고아 걸러낸 것을 배춧잎, 숙주, 고비, 등을 넣고 된장고추장으로 간을 해서 끓인다.

간략 정보 원산지, 관련 요리 ...

현대에 들어선 미꾸라지로 끓인 것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나, 미꾸리와 구분하여 미꾸라지만을 사용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개발된 미꾸라지 양식법이 대한민국의 농가에 보급되면서부터이다.[1] 형태가 유사하지 않음에도 미꾸라지 대신 사용되는 재료는 지역적인 구분에서는 순천짱뚱어를 이용한 추어탕이 있으며,[2] 대량으로 조리하는 경우 청어나 꽁치, 참치 통조림을 이용하기도 한다.

요리 재료로써의 미꾸라지에 대해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123년 예종의 조의를 위해 고려를 방문한 북송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 의 23권에서 잡속2(雜俗 二)편 어(漁)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귀인은 육고기(, 돼지)를 먹고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등은 귀천없이 잘 먹는다.

그러나 이것이 미꾸라지를 먹었다는 기록일 뿐, 추어탕 요리가 등장했다는 기록은 없다.[3] 미꾸라지는 논이나 늪처럼 진흙이 있는 곳에서 서식하므로 서식 환경과 외양 떄문에 고급 식재료로 취급되지는 않았으며, 조선 시대에는 드렁허리와 함께 아첨하거나 간교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빗대어 사용되는 등 좋은 취급을 받는 어종은 아니었다. 1850년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은 추두부탕(鰍豆腐湯)에 대한 내용과 함께 미꾸라지 삶는 방법을 기록했다. 비린내를 잡는 방법으로 골풀을 이용해 미꾸라지를 삶거나 거꾸로 매달아 미꾸라지의 점액질을 제거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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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

현대에는 통으로 끓이는 서울식과 갈아서 끓이는 추어탕을 전라도식, 경상도식으로 나누어 부른다. 통으로 끓이는 조리법이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1924년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다. 미꾸라지를 물과 소금을 넣어 해감하고 업진살이나 사태를 끓인 육수에 살코기를 건져내 밀가루를 섞어 국물의 점도를 올린다. 이후 두부, 다진 생강, 씨를 뺀 뒤 다진 고추, 다진 , 고사리, 표고버섯, 송이버섯, 삶은 곱창을 국물에 넣고 끓이다가 이후 해감한 미꾸라지를 넣어 익으면 달걀을 넣어 마무리한다. 먹을 때는 후춧가루계핏가루를 치며 국수를 말아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4]

반면 조자호의 1939년 《조선요리법》은 미꾸라지의 뼈를 발라내 고아내는 방법을 소개한다. 소금을 이용해 해감한 미꾸라지를 소금을 친 다음 문질러서 씻고 이를 푹 삶는다. 익은 미꾸라지는 머리를 잡아 당겨 뼈를 제거하고 살은 국물에 다시 넣는다. 지진 다음 썰은 두부와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간장으로 양념한 뒤 풀은 달걀을 위에 붓고 통고추를 넣어 마무리한다. 이는 조자호가 식재료로써의 미꾸라지에 느껴지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형태를 없애는 방향으로 고안한 조리법이나, 현대에 이르러 가장 대중적인 조리법이 되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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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소재

1930년대 한국 문학에서 문학적 소재로 언급되는 추탕은 갈아내거나 고아낸 형태가 아닌 통으로 끓여 형태가 남아있는 추어탕에 가까웠으며 당시 서울에서 추탕은 문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기있는 술자리 안주 중 하나였다. 이상은 추탕이 술안주로 올라온 술자리를 소재로 동료 문인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김유정〉을 《청색지》에 기고했다. 김유정은 외모와 가정상, 질병으로 인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그가 술을 마셔야만 말을 하게 되는 소심한 성격을 만들었다. 이상은 추탕 그릇에 젓가락을 두들기며 박자를 맞추다가 작가 이광수에 대한 관점차로 시작된 술자리의 말싸움이 김유정과 동료 작가의 몸싸움으로 비화되는 이야기를 담아 문학의 시대적 변화와 민족적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갈등을 다룬다.[6]

한편 백석은 《사슴》에 수록된 시 〈미명계〉를 통해 추탕집을 서정적이고 토속적 분위기를 형상화하는 시어로 활용한다. 새벽 수탉이 울고 추탕집 부엌 불빛에 물지게꾼, 장꾼, 여승을 차례대로 등장시키며 슬프고 딱한 분위기가 든다. 당시 정주에서 추탕은 선술집에서 술국으로 나오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백석이 성장한 고향 정주의 풍속을 이른 새벽부터 활동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비춰 이들 삶의 애잔함과 함께 형상화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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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사진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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