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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시뇨리오 델라 스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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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시뇨리오 델라 스칼라(이탈리아어: Cansignorio della Scala, 1340년 3월 5일~1375년 10월 19일[1])는 베로나 영주로 1359년부터 1375년까지 재위하였으며, 초기에는 형제인 파올로 알보이노와 공동 통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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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아버지 마스티노가 죽으면서, 형제들인 칸그란데 2세, 파올로 알보이노와 함께 베로나 영주권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칸그란데가 실질적인 통치권을 가졌다. 칸시뇨리오는 그의 단독 통치를 무너트리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를 암살한 후 파도바의 카라라 가문의 도움을 받아 베로나에 입성하였다.
유산
1375년에 죽기전 그는 자신의 서자들인 바르톨로메오 2세와 안토니오에게 영주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형제 파올로 알보이노를 암살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아들들은 도시 재정이 파산하면서 베르나보 비스콘티의 보호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자비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칸시뇨리오는 꽤나 적당히 베로나를 통치하였고 피에트라 교 이래로 아디제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석조 교각 및 이탈리아 최초의 감시탑 Gardello 등을 포함해 다양한 건축물로 도시를 꾸몄다. 칸시뇨리오의 무덤은 베로나의 산타 마리아 안티카의 마당에 있는 고딕 양식의 스칼리제리 무덤 중 하나이다.
홍인과 자녀
칸시뇨리오는 두라초 공작 카를로와 칼라브리아의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 두라초의 아녜스와 혼인했다. 아녜스는 두라초 공작부인 조반나의 여동생이자 나폴리의 카를로 3세의 부인 두라초의 마르게리타의 언니이었다.[출처 필요]
이들의 혼인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칸시뇨리오는 알려진 자녀 셋이 있었으며, 모두 서자이었다. 그의 딸 루치아 델라 스칼라는 처음에는 코르테시아 세레고(Cortesia Serego)와 그 뒤에는 라벤나를 다스리는 가문 출신의 페르나르디노 다 폴렌타와 혼인했다. 칸시뇨리오의 아들 바르톨로메오 2세 델라 스칼라와 안토니오 1세 델라 스칼라 등이 베로나 영주 직위를 이어받았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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