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코르티나담페초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Remove ads
코르티나담페초(이탈리아어: Cortina d'Ampezzo, 라딘어: Anpezo, 라딘어: Ampëz, 오스트리아 독일어: Hayden)는 줄여서 코르티나라고도 하며,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토주에 위치한 벨루노현 남부 알프스(돌로미티)의 중심 도시 및 코무네 (지방자치단체)이다. 알프스 계곡의 보이테강에 자리 잡은 이곳은 상류층들을 위한 여름 및 겨울 스포츠 휴양지로, 스키 코스와 절경, 고급 숙박시설, 상점, 아프레 스키 문화로 유명하며, 제트족과 이탈리아 귀족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중세 시대 당시, 암페초는 아퀼레이아 주교국 및 신성 로마 제국의 관할 하에 있었다. 1420년에 베네치아 공화국에 정복되었으며, 1508년부터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 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일시적으로 나폴레옹 치하의 영토 변화를 겪기도 했으나, 오스트리아 제국 (후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반환되어 1918년까지 유지되었다. 19세기부터, 코르티나담페초는 주된 공예품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의 현지 수공예품은 19세기 말에 관광업이 등장하면서부터 일찍이 영국과 독일의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 마을의 주요 특산 산업으로는 가구 목재 가공, 도자기 타일 난로, 철, 구리, 유리 제품 제조 등이 있었다.
오늘날, 지역의 경제는 관광업을 중점으로 하며, 특히 겨울 기간에는 일시적으로 인구가 약 7,000명에서 40,000명까지 증가한다. 산티 필리포 에 자모코 성당은 13세기 및 16세기의 교회가 있던 장소에 1769년과 1775년 사이에 건립되었으며, 코르티나담페초의 교구 교회 및 주임 사제의 공관이 위치해 있다. 또한 도시에는 1975년에 건립된 리날도 차르디니 고생물 박물관, 마리오 리몰디 현대 미술관, 암페초 민족지 박물관 등이 있다.
코르티나담페초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1944년 동계 올림픽을 치르지 못했지만, 1956년에 동계 올림픽과 이후 여러 동계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였다. 밀라노와 함께 2026년 동계 올림픽을 공동 개최하면서 두 번째 동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상위권 프로 아이스 하키 팀인 SG 코르티나의 연고지이며, 코르티나담페초는 또한 코파 도로 델레 돌로미티 경주 대회의 시작점 및 종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여러 영화 촬영이 이뤄졌으며, 대표적으로 '핑크 팬더' (1963), '007 유어 아이스 온리' (1981), '클리프행어' (1993) 등이 있다.
Remove ads
역사
요약
관점
선사시대
1987년 코르티나의 남쪽 산맥의 Mondeval de Sora 지역 내 원시 시대의 무덤 발견은 이 지역 내 중석기 시대 인류의 존재가 기원전 6천년경부터 있었음을 증명해주었다.[1][2] 기원전 6세기에, 에트루리아 문자가 카도레 지역에 도입되었으며, 기원전 5세기 초까지 남아있었다.[3][4]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인들은 라이티아족과 베네티족을 흡수하였고, 오늘날 암페초 지역에 '암플리티움'(Amplitium, '넓음'을 뜻하는 amplus에서 비롯)이라 명명했다.[5][6]
중세부터 19세기
로마 제국 멸망부터 랑고바르드 시기까지 카도레 지역에 대해 어떠한 역사적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야만인의 침공기 시기, 이곳의 거주민들은 파사, 바디아, 카르데볼레, 암페초 계곡으로 달아난 것으로 추정된다.[7]
중세 시기, 암페초는 아퀼레이아 주교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관할 하에 있었다. 1420년, 베네치아 공화국에 정복되었다.[8] 1508년에 합스부르크 가문에 정복되었으며, 1511년경 암페초의 사람들은 막시밀리안 신성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이 지역은 이후 푸스테르탈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9] 1797년에, 캄포포르미오 조약이 체결되면서, 나폴레옹은 초기에 합스부르크 제국이 이곳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했으나, 1810년에 그는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마을이 불타는 사건 이후 암페초를 피아브 데파르망에 추가했다.[10] 이는 일시적이었고, 오스트리아 제국이 1813년에 이곳을 되찾았으며, 1866년 쿠스토차 및 사도바에서 전투로 베네치아가 이탈리아에 넘어간 뒤에도 이곳의 소유권을 유지했다.[9] 암페초는 요양지로 명성을 얻었고 콜레라 같은 질병으로부터 낫게 해준다고 하였다.[11]
1874년, 암페초 숲은 카르니아 산림 조합의 소유가 되었다.[12] 1920년까지 오스트리아 영토로 남아 있었으며(티롤 백국의 일부로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어권 지역으로 변하지 않고, 본래의 언어인 레토로망스어군의 라딘어를 보존하였다.[13]
20세기

이탈리아가 1915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던 시기, 이곳의 남성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 전선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남성 669명 (이들 중 대부분은 16세 이하이거나 50세가 넘었다)은 이탈리아 군대와 분투했다. 이탈리아군보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이들은 퇴각해야만 했다. 1917년 오스트리아가 되찾으면서, 티롤의 '슈탄트쉬첸'이 다시 점령하였다.[14] 1917년 11월 24일, 합스부르크 황제 카를 1세는 암페초를 방문했고 주민들로부터 열광을 받았다. 한 소녀가 황제에게 본인의 아버지를 전선에서 돌아오게 해달라는 요청을 담은 편지를 건냈는데 그의 아내이자 아홉 아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10일 뒤, 베페 마나이고(Bepe Manaigo)는 자녀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총 144명의 아페초 주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사망했다. 아페초의 병사들은 용맹함을 인정받아 은메달 16개와 동메달 4개를 수여받았다. 도시 주변으로 38개의 군인 공동묘지가 있었고, 곳곳에 참호와 철조망, 포탄 구멍, 파편, 탄약, 막사들이 남아 있었으며, 2,450 헥타르의 숲이 파괴되었다.

코르티나 주변 산은 대전쟁 기간 몇 차례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제1차 세계 대전 승전으로, 암페초 (티롤 남부와 중부 지역과 더불어)는 최종적으로 1920년 이탈리아에 양도되었다. 3년 뒤, 티롤과 분리되어 (콜레산타루차와 리비날론고델콜디라나와 함께) 베네토주의 일부였던 벨루노도에 통합되었다.[15][16][17]

전쟁 이후 암페초는 암페초 계곡 가운데에 위치했던, 암페초 지역을 구성하던 여섯 개 마을 중 하나의 이름을 더하며 "코르티나담페초" (암페초 계곡의 커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18]
코르티나담페초는 주요 요새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대규모 탄약 저장고가 설치되었다 (46°36'50"N / 12°09'27"E). 1945년, 코르티나 담페초는 미군과 영국군의 오스트리아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이탈리아군과 독일군의 최후 방어거점으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과 탄약고는 1945년 4월 26일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의 악천후로 인해 제15 공군 제49 폭격비행단의 공격은 무산되었다.
이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부터 이른 시기 영국 관광객들의 명소였던 코르티나담페초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상류층들의 휴양지가 되었다. 코르티나담페초는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회가 무산되고 말았다. 마침내 1956년에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덕에,[19] 코르티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 명소로 성장했으며, 관광객 수가 크게 증가했다.[20] 2008년에 상주 인구가 6,150명이던, 코르티나는 성탄절 휴가 기간 및 8월 중순 같은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인구가 50,000명 가량으로 증가한다.[21] 1970년대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린 차 포드 코티나는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21세기 정책
2002년에 암페초의 소총 부대 Ŝizar Anpezo Hayden이 재창설되었다.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가 2005년에 이곳을 방문한 이래로 카를 1세가 코르티나의 수호 성인 취급을 받고 있다. 특히 격동의 역사로 인해, 21세기에도 코르티나에는 여전히 합스부르크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프란츠 요제프 1세 및 이곳에서 특히 존경받는 카를 1세 등의 여러 그림과 사진이 식당, 술집, 호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1년부터는 1511년 사건 및 티롤 지역과 암페초 계곡의 연대를 기념하여 주 광장에 막시밀리안 1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22]
2007년 10월, 베네토주에서 분리되어 인접한 다른 주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로 편입되는 안건에 대해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이는 남티롤의 라딘어 공동체와의 문화적 연대 및 낮은 세금 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최종 결정은 베네토주와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양쪽 주의회 동의를 거쳐, 이탈리아 의회가 법률로 정해야 했다.[23][24][25]
201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제1당은 득표율 30.4%의 민주당이었고, 뒤를 이어 전진이탈리아 (19.4%)와 쥐티롤러 폴크슈파르타이 (14.1%) 등이 있었다.[26][27]
Remove ads
지리 및 기후
요약
관점
코르티나는 암페초 계곡의 중앙부, 돌로미티 산맥에 둘러싸인 보이테 계곡의 상류에 위치해 있다. 보이테강은 코르티나를 가로 질러 흐른다. 이 지역의 산들은 '험준하고', '우뚝 솟았으며', '바다에서 뜯겨 나온 거대한 산호초처럼 소나무로 장식되어 있고, 눈으로 수놓여 있어 한 눈에 뜨인다'라고 묘사된다.[28] 카도레 (남쪽)와 푸스테리아 계곡 (북쪽), 발 단시에이 (동쪽), 아고르도 (서쪽) 사이에 위치해 있다.[29] 본래 여러 프라치오네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1950년대부터 관광업으로 인해 급격하게 코르티나가 성장하면서 현재는 가장 외진 마을들만이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산비토디카도레는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남쪽으로 9 킬로미터 (5.6 mi) 거리에 떨어져 있다.[30]
주변 산으로는 서쪽의 토파네산, 북쪽의 포마냐뇬산, 북동쪽의 크리스탈로산, 동쪽의 팔로리아산과 소라피스산, 남쪽의 베코디메초디산, 크로다 라 라고산, 친퀘 토리산 등이 있다. 암페초의 돌로미티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3,264m의 안텔라오산 (라딘어:Nantelou)이다. 날씨가 좋을 때, 안텔라오산은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 항구에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도심은 해발 1,224 미터 (4,016 ft)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그 중에 가장 높은 곳은 토파나 디 메초 (Tofana di Mezzo)로, 해발 3,244 미터 (10,643 ft) 지점에 있다.[31] 이 지역에는 다수의 빠르게 흐르는 강, 하천, 작은 호수 등이 존재하며, '게디나'(Ghedina), '피아노체스'(Pianozes), '다잘'(d'Ajal) 등인데, 여름철 눈이 녹는 시기에 특히 수량이 많아진다.[32] 코르티나담페초의 동물상에는 마멋, 유럽노루, 알프스산양, 산토끼 등이 있으며 이따금, 회색늑대, 곰, 스라소니 등도 있다.[33] 코르티나 지역의 대부분은 '암페초 돌로미티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34]
- 코르티나담페초 도심
- 토파네 산군
프라치오네
코르티나담페초를 이루고 있는 프라치오네(마을)는 다음과 같으며 괄호는 라딘어 지명이다: Acquabona (Agabòna), Alverà, Bigontina (Begontina), Cadelverzo (Cadelvèrzo), Cademai, Cadin (Ciadìn), Campo (Ciànpo), Chiamulera (Ciamulèra), Chiave (Ciàe), Cianderìes, Coiana (Cojana), Col, Cortina, Crìgnes, Doneà, Fiames (Fiàmes), Fraìna, Gilardon (Jilardòn), Gnòche o Gràa, Guargné, Lacedel (Lazedèl), Manaigo, Majon, Melères, Mortisa (Mortìja), Pecol (Pecòl), Pezié, Pian da Lago, Pocol (Pocòl), Rònco, Salieto, Socol, Staulin (Staulìn), Val, Verocai, Vera (Vèra), Zuel (Zuèl).[35]
기후

코르티나담페초는 타이가 기후에 가까운 한랭 고산 습윤 대륙성 기후 (쾨펜: Dfb; 트레와다: Dclo)를 띠며, 여름 짧고 온화하며 길고 혹독한 겨울은 매우 추운 날씨와 눈보라, 불안정한 기후, 그리고 간혹 찾아오는 온화한 날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12월 말과 1월 초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지역 중 일부가 이 지역에서 발견되며, 특히 벨루노도와 볼차노도 경계 지역 치마반케 고개 정상에서 확인된다.[36] 다른 계절 때는 보통 비가 많이 내리고, 서늘하면서 따뜻하며, 바람이 많이 분다.[37] 여름에는, 기온이 25°C까지 오를 수 있.
Remove ads
인구

코르티나의 인구는 이탈리아에 합병되고 나서 1960년대까지 꾸준히 성장했다. 그 이후로, 가파른 감소 추세를 겪었으며 (30년간 거주민 2,099명이 감소), 최근 몇 년간 회복 신호를 보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인구가 6,112명에 불과한 코르티나담페초는 벨루노 (36,509명), 펠트레 (20,688명), 세디코 (9,734명), 폰테넬레알피 (8,521명), 산타주스티나 (6,795명), 멜 (6,272명)에 이어 도 내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다. 2008년에, 44명 (7.1 ‰)이 출생하고 67명 (10.9%)이 사망하면서, 전체적으로 인구가 23명(−3.8 ‰) 감소하였다. 도시 내 2,808 가구는 평균 2.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39]
코르티나담페초의 외국인 인구는 상당히 최근에 생겼으며, 본래 인구가 많지 않은 이 작은 도시에서, 수는 극히 적은 편에 속한다. 298명이 존재하며, 전체 인구의 4.9%를 이룬다. 이는 벨루노의 7.0%, 벨루노도 내 전체 6.4%, 베네토주의 10.2%와 대비된다.[39]
언어 및 방언
이탈리아어 외에도, 인구의 대부분은 최근 들어 방언이라기보다는 언어로서 인정 받은, 라딘어의 현지 변형 형태의 암페초어(Ampezzano)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라딘어는 레토로망스어군의 일종으로 스위스에서 사용되는 로만슈어와 상당히 닮아 있다.[40] 젊은 세대에서 사용되는 생생한 수단으로서 현지 언어의 보존은 자부심의 상징이자 토착 전통에 대한 애착으로 여겨진다. 라딘 및 티롤적 문화는 최근 몇 년간 커져가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이어나가고 있다.[41] 현지 언어에 대한 중요성은 지방 당국에서 조차도 인식하기 시작하여, 2007년 12월, 1999년부터 시행 중인 언어적 소수자 보호 규정에 따라, 거리와 마을 이름 표지판에 라딘어표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42]
경제
요약
관점
19세기를 시작으로, 암페초는 공예품으로 유명한 지역 내 대표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 산업 부문의 중요성이 커지자, 오스트리아 상업부는 1874년에 국립 산업 학교의 설립을 승인하였다. 이 학교는 이후 예술학교로 발전했으며, 목공과 금속 세공 교육으로 명성을 얻었다. 13세 이상의 소년들을 받아 최대 4년 동안 교육을 실시하였다.[43] 현지의 수공예품은 19세기 후반 관광업이라는 것이 부상하면서 일찍이 영국과 독일 방문객들의 각광을 받았다. 현지 제품의 일부는 미신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언론인이자 인류학자인 카를 펠릭스 볼프는 1935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한 지역 장인이 "칼을 만들어 그것을 구부려 묶었다가도 다시 곧게 펴질 만큼 유연했다"라고 한다.[44] 주요 특산 산업으로는 가구 목재 가공, 도자기 타일 난로, 철, 구리, 유리 제품 제조 등이 있었다.[45]
오늘날 현지 경제는 관광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겨울 시기에는 인구가 보통 약 7,000명에서 40,000명으로 증가한다.[20] 론리 플래닛은 코르티나담페초를 가리켜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세련되었으며, 가장 비싼 스키 리조트'이며, '일류 시설 (스키, 스케이팅, 썰매, 등반)을 자랑하며, 탁월한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하다'라고 언급했다.[46]
코르티나 담페초에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불가리, 베네통, 구찌, 지옥스)를 비롯해 다양한 장인 공방, 골동품 상점, 수공예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47] 또한 등산 장비에 특화된 여러 상점들도 자리하고 있다. 1893년 6월 28일에 'Consumverein Ampezzo'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라 쿠페라티바 디 코르티나'가 코르티나 쇼핑의 상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48] 이 쇼핑몰에는, 제과점에서부터 신문 가판대, 장난감점, 기념품점, 스키 용품점, 대장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건물은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간 높게 설계된 평면과 발코니 형태). '라 쿠페라티바 디 코르티나'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협동조합 중 하나로, 현재 약 2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의 명성,[49]을 갖고 있는, 별 다섯 개의 Miramonti Majestic Grand Hotel[50]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과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기 사냥용 별장이었던 곳으로, 105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51] 다른 유명한 호텔에는 Hotel Cornelio on Via Cantore, Hotel Montana on Corso Italia, Hotel Menardi on Via Majom, Hotel Villa Gaiai on Via Guide Alpine, the Grand Hotel Savoia on Via Roma 등이 있다.[52]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Rifugio Faloria, Rifugio son Forca, Rifugio Capanna Tondi, Rifugio duca d'Aosta 등 일부 마운틴 호스텔이 있으며, 후자의 경우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53]
Remove ads
명소
요약
관점
비곤티나강(Bigontina)의 다리 근처에 티롤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가 자리잡고 있다. '안젤로 디보나 광장'(Piazza Angelo Dibona)에는 이곳의 명소가 몇 개가 존재한다. 'Ciasa de ra Regoles'는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도시가 등장하기 이전 현지 마을들의 의회였던 '레골리에리'(regolieri)가 공동체를 지도하고 행정 명령을 내리던 곳이었다.[54] 한때 이 건물은 코르티나 담페초 초등학교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암페초 지역 공동체 협회'(Comunanza delle Regole d’Ampezzo) 사무국과 마리오 리몰디 현대미술관이 입주해 있다. 코르티나담페초의 주 광장은 이곳 출신의 저명한 산악 가이드 안젤로 디보나의 이름을 따 붙여진 것이다.[55]
박물관 및 미술관
암페초 협의회가 암페초 박물관 단체(Musei delle Regole d'Ampezzo)를 감독하며, 리날도 차르디니 고생물 박물관, 암페초 민족지 박물관, 마리오 리몰디 현대 미술관 등 세 개 박물관으로 이뤄져 있다.[56]
1975년에 설립된 리날도 차르디니 고생물 박물관은 이 지역의 사진작가 리날도 차르디니가 발견, 수집, 분류한 수백 점의 화석으로 이뤄진 고생물 박물관이다. 소장품들은 모두 돌로미티 산맥에서 발견된 것들이며 돌로미티의 높은 산들이 해양 생물들이 살았던 거대한 열대 바다의 해저이었던 시기를 전하고 있다.[57]
암페초 민족지 박물관은 도심에서 북쪽 보이테강과 펠리촌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옛 베네치아의 제재소를 복원한 곳에 위치한 민족지 박물관이다.[58] 이곳에는 인접한 지역의 일상생활, 농경 및 목축 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농기구, 기술 및 재료 가공 도구, 그리고 계곡 지역 특유의 전통 의복 등이 있다.
마리오 리몰디 현대 미술관은 1941년에 설립된 미술관으로, 필리포 데 피시스, 펠리체 카레나, 피오 세메기니, 레나토 구투소, 툴리오 가르바리, 마시모 캄필리 및 그 외 여러 20세기 이탈리아의 주요 예술가들의 작품 80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59] 다양한 주제로 임시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대전쟁 투어가 라구추오이산과 사스 데 스트리아산 사이의 산악 지형 80 km (50 mi)가 넘는 지역에 대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참호와 터널로 이뤄진 대전쟁 야외박물관을 포함한다. 겨울 때는 스키 이용객들도 갈 수 있지만, 여름에는 도보나 산악 자전거를 통해 방문하는 것이 훨씬 접근성이 낫다.[60]
교회

산티 필리포 에 자코모 성당은 13세기 및 16세기의 교회가 있던 장소에 1769년과 1775년 사이에 건립되었으며, 코르티나담페초의 교구 교회 및 주임 사제의 공관이 위치해 있다.[61] 구속주(救贖主)의 예수 모습이 장식되어 있는 이곳의 뛰어난 목재 재단은 안드레아 브루스톨론이 조각한 것이다. 천장에는 루이지 게디나의 "성전을 정화하는 그리수도", "성 필립보의 순교", "성 야고보의 처형" 등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62]
키에사 델라 마돈나 델라 디페사(Chiesa della Madonna della Difesa)는 14세기의 건축물이 있던 곳에 1750년에 세워졌다. 이곳의 파사드에는 수호자 성모 (Madonna della Difesa)를 묘사하는 복잡한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으며, 실내에는 값비싼 조각, 회화, 다채색의 대리석, 금박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63]
베스타 베르지네 디 루르드 예배당은 1907년에 완공되었다. 발 가르데나 출신의 예술가 코라도 피차이더(Corrado Pitscheider)가 장식한 이 작은 교회는, 재건 조각으로 인해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64]
키아베(Chiave)의 산탄토니오 다 파도바 예배당 (Cappella di Sant'Antonio da Padova)은 1791년에 지어졌으며, 내부는 나폴레옹 군대로 인해 심각한 화재 피해를 입어 1809년에 보수가 이뤄졌다. 장식품에는 그리스도와 성 카타리나의 목재 흉상과 더불어 화려하게 장식된 재단이 있다.[65]
포콜 군사 기념비는 포콜 지역에서 팔차레고 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1,535 미터 (5,036 ft) 지점에 있는 공동묘지 및 사당이다. 조그만 교회와 공동묘지가 1916년에 제5 알프스 연대에 의해 군사 공동묘지로서 건립되었다. 사당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돌로미티 전선에서 생을 마감한 수천 명의 군인들을 위한 기리는 시설로서 1935년에 만들어졌다. 사당은 석재로 된 거대한 정방형 탑 형태로, 건물 아래 암페초 계곡 전역에서 뚜렷하게 보인다. 구조물의 중앙 지하에는 군사훈장 금메달을 수훈한 안토니오 칸토레 장군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66]
성과 요새

카스텔로 데 찬나는 마욘(Majon)에 위치한 작은 요새이다. 낮은 흰색 외벽과 두 개의 흰색 모퉁이 탑, 그리고 성삼일체에 헌정된 작은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설은 1694년에 시작되었으나, 1696년 8월 19일 작업이 중단되어, 1809년까지 미완 상태로 남아있다가 암페초를 침공한 프랑스 혁명군에 불태워진다.[67] 그 이후로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트레 사시 요새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기인 1897년 발파롤라 고개에 건설된 요새이다. 사스 데 스트리아산과 피콜로 라가추오이산 사이에 놓여 있어, 남티롤의 팔차레고 고개와 발 바디아 사이 고갯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국경에 지어진 거대한 오스트리아 측의 요새시설의 일부였다. 1915년 7월 5일 이탈리아 측의 폭격으로 사용 불능이 된 이곳은 수리가 되지 않은 채 내버려졌다가 21세기에 들어 라체델리 가문의 도움으로 코르티나담페초 행정 기관의 복원이 이뤄졌다. 요새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유물이 있는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68]
카스텔로 디 보테스타뇨 (또는 포데스타뇨)는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보에티강 계곡의 바위에 자리 잡은 중세 요새이다. 이 탑은 7세기에서 8세기 사이 랑고바르드족과의 분쟁 당시, 감시탑으로 처음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며, 아래에서 합류하는 세 계곡 보이테 계곡, 파네스 계곡, 펠리촌 계곡 등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토대는 11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69] 1077년까지 독일인들이 보유했으며, 그 뒤로 아퀼레이아 주교 (12세기)와 카미노 가문 (13세기)의 소유였다가 용병대장들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고 난 뒤 베네치아에 넘어갔다가 최종적으로 합스부르크가의 소유가 되었다. 18세기 기간 이곳은 점차 중요도가 떨어지다가 요제프 2세 황제의 명으로 경매에 부쳐졌다.[70] 현재 요새는 거의 모습이 사라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풍화되어 대부분이 초목으로 가려진 포도주 저장소와 건물의 기초로 보이는 잔해만이 남아있다.[69]
Remove ads
문화
요약
관점
코르티나담페초는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작가, 지식인, 시인, 출판인들이 찾아오는 전통을 지녀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솔 벨로, 디노 부차티, 비토리오 가스만, 레오나르도 시아시아, 레오나르도 몬다도리 등 수많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도시의 문화 생활에 참여했다. 세월이 흐르며, 이는 2009년부터 매년 두 차례 개최되고 있는 '우나 몬타냐 디 리브리'(Una Montagna di Libri, 책의 산) 같은 문학 축제와 도서 발표회가 꾸준히 열리는 문화 활동으로 이어졌다. 앞에 언급한 축제에는 아자르 나피시, 피터 캐머런, 에마뉘엘 카레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코르티나 담페초를 찾아 참여했다.
음악은 코르티나담페초 현지인들에게 중요한 요소이며, 기타는 대부분의 주택에서 찾아볼 수 있고, 젊은 음악가들은 걸어다니는 중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71]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디노 차니 축제 및 학회가 열린다. 이 축제는 겨우 32세의 나이에 사망한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디노 차니 (1941–1974)를 기리기 위해 열린다. 또한 전 세계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끌어모으며, 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에게서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밴드의 축제는 8월 마지막 주 기간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에서 온 브라스 밴드들이 출연하는 해마다 열리는 또다른 음악 축제이다. 전통 복장을 입고 퍼레이드를 하는 코르티나담페초의 밴드는 1861년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주요 관광 요소이다.[45] 코르티나담페초는 마르첼라 마리아니가 우승한 1953년 미스 이탈리아를 개최한 바 있다].[72] 전통적으로, 예수 승천일, 성령 강림절, 삼위일체 축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축일 전날에, 도시의 젊은이들은 일몰 때 언덕을 올라 불을 피운다.[71]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아내 해들리가 파리의 리옹역에서 헤밍웨이의 원고가 든 가방을 잃어버리자, 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같은 해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때늦은 계절'(Out of Season)을 집필했다.[73]
코르티나담페초의 주요 종교는 천주교이다. 소수 종교에는 최근 이민의 결과로, 동방정교회 교도들과 무슬림 등의 소규모 공동체가 존재한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 집회도 존재하며, Pian da Lago라고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74]
코르티나 주변은 여러 영화들의 로케이션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클리프행어', '혹성의 위기', '핑크 팬더 등에서 등산 장면 촬영 장소로 쓰였다. 이곳의 리조트는 세르조 코르부치의 수정주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위대한 침묵' 촬영 장소의 주요 무대이며, 이곳은 1898년 겨울 유타주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75]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애쉬 웬즈데이' (1973)의 매혹적인 장소였고, 1981년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유어 아이스 온리'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였다. 로저 무어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는 포파나산 정상에서 루이지 페라라 (존 모레노분)이라는 인물을 만나 호텔 미라몬티에서 머문다. 본드와 바이애슬론 선수로 등장하는 에리히 크리글러(존 와이먼분)가 등장하는 여러 액션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전투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 추격 장면 중 하나로 절정을 맞는다. 이 장면에서 본드는 스파이크 바퀴가 달린 오토바이를 탄 크리글러와 암살단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며, 그들의 추격은 결국 봅슬레이 활주로 위로 이어진다.[76] 실제 도시 중심부는 본드와 그의 파트너 멜리나 해블록(카롤 부케분)이 두 명의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첫 번째 공격을 받는 장면의 배경이기도 하며 그들은 본드를 치어 죽이려 하지만,본드는 둘 다 제압해 그중 한 명을 꽃집 창문으로 날려버린다.[77] 코르티나담페초는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이 연출한 1919년 무성 영화 '블라인드 허즈번드'의 배경이었다.
Remove ads
스포츠
요약
관점
코르티나담페초는 본래 1944년에 예정되어 있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취소된 195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었다. 1927년 노르딕, 1941년 노르딕, 1941년 알파인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 등이 마찬가지로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개최되었으나 1941년에 열린 두 대회는 국제 스키 연맹이 1946년에 무효 처리하였다.[78] 코르티나담페초는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두고 1988년에는 캘거리에, 1992년에는 프랑스의 알베르빌에 내주고 말았다.[79]

코르티나담페초는 2021년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 대회를 개최했으며, 밀라노와 공동으로 2026년 동계 올림픽과 2026년 동계 패럴림픽을 개최할 예정이다.[80][81]

이탈리아 최상위 아이스 하키 프로 리그, 세리에 A1의 팀 SG 코르티나가 이곳을 연고로 한다. 코르티나담페초는 또한 클래식카 경주 대회인 코파 드 오로 델레 돌로미티가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다.[82] 2009년에는 레드불 로드 레이지가 열렸다.[83]
코르티나담페초는 또한 돌로미티 슈퍼스키 지역의 12개 리조트를 중심으로 초보자들을 위한 스키 시설을 갖추고 있다. 코르티나담페초 자체적으로도 34개 리프트가 있는 총 115 km (71 mi) 슬로프가 존재하고 12월부터 4월까지 95% 이상의 적설률을 보장한다. 게다가 스키 학교 여섯 곳(크로스 컨트리는 두 곳)과 약 300명의 교육자들이 존재한다. 팔로리아-크리스탈로-미에트레스 스키 지역은 암페초 계곡이 내려다 보이며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수준의 이용객에게 적합하다. 토파네 지역은 해발 2,500 m (8,200 ft)에서 이어지는 카날로네(Canalone)와 슈스(Schuss) 슬로프를 통해 보다 도전적인 코스를 제공한다. 최장거리 슬로프인 라가추올리-5 토리(Lagazuoi-5 Torri) 구역의 아르멘타롤라(Armentarola)는 해발 2,752 m (9,029 ft) 높이의 라가추올리에 있는 대피소 옆에서 시작하며 케이블 카를 통해 올라갈 수 있다.[45] 포르첼라 스타우니에스 (Forcella Staunies, 현재는 폐쇄)와 포르첼라 로사(Forcella Rossa)와 더불어, 코르티나담페초의 스키 구역은 돌로미티에서 가장 가파른 곳 중 한 곳이다. 코르티나담페초 주변 산악 지대에는 다양한 프리라이드와 스키 투어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84]
코르티나 담페초에는 옛 철도 노선을 따라 조성된 긴 구간을 포함해,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위한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또한 코르티나 담페초 시내와 주변 지역에서는 컬링, 스키 등산, 스노보드, 썰매, 익스트림 스키 등 다양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여름 시기의 스포츠에는 트레킹, 트레일 러닝, 산악 자전거, 암벽등반, 테니스, 골프, 수영, 아이스 스키 등이 있다. 코르티나담페초는 주변 산에 있는 여러 비아 페라타로 유명하며 그 중 VF 이바노 디보나는 영화 '클리프행어'에 쓰였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인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Lavaredo Ultra Trail)은 코르티나담페초를 주변으로 하고 있다.[45]
Remove ads
미식
코르티나담페초는 지역 전통과 오스트리아의 영향이 혼합된 이례적인 음식 경험을 제공한다. "chenedi"와 "Casunziei" 같은 짭짤한 전체요리, 버섯구이, gröstl 같은 푸짐한 육류 요리가 특징한 이 지역 음식은 이곳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맛보게 해준다. 방문객들은 사과 슈트루델과 리코타 타르트 등 다양한 맛있는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85]
교통
코르티나 공항은 1956년 동계 올림픽을 위해 건설되었으나, 현재는 폐쇄되어 있다. 코르티나담페초는 자체적인 버스 운행을 하고 있으며, 주변 마을과 케이블 카 리프트를 연결하고 있다.[86] 가장 가까운 공항은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곳들로, 거리 순으로 트레비소 공항은 138 km (86 mi) 거리에 있고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은 148 km (92 mi)에 있다. 두 공항은 도로를 따라 약 두 시간 15분 정도 소요된다.[87] 코르티나담페초의 역사로는 동남쪽으로 37 km (23 mi) 거리 칼랄초디카도레에 있으며, 철도를 통해 베네치아와 연결되어 있고 코르티나담페초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베네치아로 향하는 데 모두 걸리는 시간은 약 세 시간 30분 정도이다. 베네치아 메스트레역과 파도바역에서 직행 버스 노선도 있으며, 유로스타의 도착 및 출발 시간에 맞춰 연결되어 있다.[88]
코르티나담페초는 칼랄초에서 도비아코를 연결하는 협궤 (950 mm) 돌로미티 선의 중요한 중간역이다. 돌로미티 선이 1929년에 전철화가 되었을 당시 유일한 변전소가 코르티나담페초에 세워졌다.[89] 이 철도 노선은 1964년에 폐쇄되었다가 2016년 2월 베네토주 및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지방 정부 등에서 칼랄초, 코르티나담페초, 도비아코 등을 잇는 새로운 철도선을 건설하기 위한 용역 연구를 의뢰할 예정이라 밝혔다.[90]
유명 인물
코르티나담페초는 여러 유명 인사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주 이들에게 창작 활동을 위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에는 '타타르인의 사막' 저자 디노 부차티 (1906년–1972년), 고프레도 파리세 (1929년–1986년), 페르난다 피바노 (1917년–2009년) 등 이탈리아 소설가들이 있었다.[45] '무기여 잘 있거라'의 저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도 앰뷸런스 운전 기사로서 1918년 이곳에 왔었다.[91] 그 외 유명한 방문객들로는 1857년에 펠모산을 오른 아일랜드의 등산가이자 자연학자 존 볼 (1818년–1889년), 이탈리아의 등산가들인 에밀리오 코미치 (1901년–1940년), 안젤로 디보나 (1879년–1956년), 리노 라체델리 (1925년–2009년), 이탈리아 스키 선수 크리스티안 게디나 (1969년 출생), 이탈리아 봅슬레이 선수 에우제니오 몬티 (1928년–2003년), 오스트리아 등산가 파울 그로만 (1838년–1908년), 오스트리아 스키 선수 토니 자일러 (1935년–2009년) 등이 있다. 잦은 방문객들에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전직 자동차 레이싱 선수 파올로 바릴라 (1961년 출생)와 언론인 및 작가 인드로 몬타넬리 (1909년–2001년) 등이 있다.[92]
코르티나담페초의 유명한 스포츠인으로는 스키 선수 엔리코 콜리와 그의 동생 빈첸초, 192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했던 주세페 게디나, 1932년 그리고 1936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세베리노 메나르디,[93] 2022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컬링 선수 스테파니아 콘스탄티니 등이 있다. 그 외 인물들에는 등반가 안젤로 디보나 (1879년–1956년),리노 라체델리 (1925년–2009년), 화가 루이지 길라르두치 (1822년–1856년) 등이 있다.[94]
Remove ads
국제 관계
자매 도시
코르티나는 다음과 자매 결연 관계에 있다: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