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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양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 자는 영년(永年)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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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양(彭羕, 178년[1] ~ 214년[1])은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영년(永年)이며 익주 광한군 사람이다.

간략 정보 팽양彭羕, 출생 ...

생애

간략 정보 이름, 시대 ...

유장(劉璋)과 유비(劉備)를 섬겼다.

익주의 서좌(書佐)가 되었을 때, 참언을 들은 유장은 그에게 머리를 깎고 항쇄(項鎖: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를 채우는 곤겸형(髠鉗刑)에 처해져 노역수가 된다.

훗날 서촉정벌 때 유비의 모사 방통(龐統)을 찾아갔으며, 그 재능을 인정받아 방통(龐統)과 법정(法正)의 주선으로 유비의 진영에 합류하였다.

팽양은 자신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였기 때문에 유비는 그를 중용하였으며, 유장을 토벌한 후 익주의 치중종사(治中從事)로 삼았다.

하지만 팽양은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제갈량(諸葛亮)은 유비에게 "팽양은 야심이 큰 자이니, 편히 쓰실 수 없을 겁니다"라고 은밀하게 일러주어 유비는 그를 강양태수(江陽太守)로 좌천시켰다.

이에 불만을 품은 팽양은 마초(馬超)에게 "그 늙은이(유비)는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대가 바깥(군사)을, 내가 안(내정)을 잡으면 천하도 노릴 수 있을 터인데…"라고 넌지시 일렀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마초는 이를 유비에게 상소해 팽양은 체포된다. 팽양은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변명하나 결국 처형된다.

이때 그의 나이 3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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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속 팽양

연의에서 자는 영언(永言)이다.

방통 밑에서 적절한 충고로 유비의 신하가 된다.

맹달(孟達)로 인해 번성 전투에서 관우(關羽)가 죽자, 팽양은 입장이 난처해진 맹달에게 편지를 써 하인을 시켜 보내었다.

그러나 하인은 마초에게 붙잡혀 투옥되었고, 진상을 알아보려고 한 마초는 팽양을 찾아갔다. 팽양은 마초에게 속아 진의를 이야기하고 모반을 제안하였으며, 이 말이 유비에게 전해져 체포되어 처형된다. 팽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맹달은 상용(上庸)을 버리고 위(魏)에 투항했다.

같이 보기

참고 문헌

  • de Crespigny, Rafe (2007).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Later Han to the Three Kingdoms 23-220 AD. Leiden: Brill. ISBN 9789004156050.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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