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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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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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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성(일본어: 伏見城, ふしみじょう)은 일본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에 있던 성의 이름이다. 현재 그 터에 세워진 후시미 모모야마 성(伏見桃山城)은 근대의 건축물로 후시미 성과는 관계없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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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 성의 천수.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은거 후 거처로 삼기 위하여 우지강 연안의 낮은 구릉인 시즈키산(指月山)에 주라쿠다이의 건물을 이축하는 등의 방식으로 축성했다. 하지만 1596년 발생한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자, 500m 떨어진 고하타 산(木幡山)에 새로 축성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성에서 1598년 사망하였고, 성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라 할 후시미 성 전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후 쇼군의 선하(宣下) 의식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오사카 전투 이후 그 역할이 오사카성으로 옮겨가면서 중요성이 덜해졌다. 결국 후시미 성은 이에야스가 은거한 1625년에 폐성되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의 선비 강항(姜沆)은 히데요시 사후 어느 일본인 승려를 따라 자신이 직접 후시미 성에 몰래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간양록》(看羊錄)에서 자신이 본 후시미 성의 모습에 대해 "다섯 걸음마다 절이 하나씩 있고 열 걸음마다 누각이 하나씩 있는데, 이리저리 이어져 있어 어느 길을 따라 나가야 할지를 모를 정도다. 귀신이 재목을 가져다 돕는다 해도 1, 2년 정도로는 공사를 마치지 못할 텐데 이걸 1년이 못 되어 다 지었다니, 왜놈들이 얼마나 제 백성을 혹사시켰는지 왜인들이 얼마나 힘을 쏟아 일했을 지를 족히 상상하고도 남았다."고 적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 후시미 성의 혼마루 터 등 주요 성곽 자리에는 메이지 천황의 능묘가 들어서 출입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꽃밭 자리에는 1964년, 유원지 '후시미 모모야마 성 캐슬랜드'가 건설되었고 그 시설 중 하나로 모형 천수각인 후시미 모모야마 성이 세워졌다. 2008년 현재 유원지는 폐쇄되었으며 대신 '후시미 모모야마 성 운동공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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