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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네덜란드-영국 조약
1824년 영국과 네덜란드가 체결한 조약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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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네덜란드-영국 조약 또는 1824년 런던 조약(영어: Anglo-Dutch Treaty of 1824. 네덜란드어: Verdrag van Londen (1824))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과 네덜란드 연합왕국(네덜란드)이 1824년 3월 17일 영국 런던에서 체결한 조약이다. 조약의 원인은 1814년 네덜란드-영국 조약 문제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내 영국과 네덜란드의 영향권에 대한 조정이었다. 이 조약을 통해 1825년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령 믈라카와 네덜란드령 인도 등을 영국에 완전히 이양하고, 영국은 네덜란드에 영국령 벤쿨런을 1824년 할양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안톤 레인하르트 팔크를 대표로 파견했고, 영국에서는 조지 캐닝과 찰스 윌리엄즈윈이 대표로 파견되었다.[1] 이 조약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1870년부터 1871년까지 이어진 수마트라 합의를 통해 해결되었다. 1824년 조약은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 조약을 통해 오늘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국경과 싱가포르-인도네시아 국경이 마련되었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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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요약
관점
대프랑스 동맹 전쟁
1792년 프랑스 혁명 전쟁이 발발했을 때, 동인도 지역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이 실질적인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동인도 회사가 영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천하는 주요 수단이었기 때문에 동인도 지역은 영국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지역이었다.[2] 영국 동인도 회사는 자체적인 함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영국 해군의 지원을 받았다.[3] 1795년 플랑드르 전역에서 네덜란드 공화국이 패배한 뒤 프랑스의 자매공화국인 바타비아 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었고, 당시 네덜란드의 스타트하우더였던 빌럼 5세는 영국 국왕에 네덜란드 식민지를 임시로 영국에 이양한다는 친서를 보냈다. 1795년 영국은 바타비아 공화국의 식민지였던 실론과 케이프 식민지를 침공하는 한편, 네덜란드령 믈라카를 비롯한 일부 지역을 이양받았다.[4]
1801년 빌럼 5세가 바타비아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면서 친서 조건은 모두 무효가 되었지만,[5] 영국은 동인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바타비아 공화국의 식민지를 공격했다. 1806년부터 1807년까지 영국은 자바섬에 원정을 단행했고, 1810년대에는 몰루쿠 제도와 자바섬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6][7] 1813년 네덜란드가 프로이센과 러시아 연합군의 도움으로 독립을 얻으면서 연합 네덜란드 주권공국이 탄생했다.[8]
1814년 조약과 이후 분쟁
1814년 8월 13일,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기간 점령했던 네덜란드 식민지를 반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영국이 식민지를 네덜란드에 반환한 시기는 식민지마다 차이가 있었다. 네덜란드령 믈라카는 1818년에 네덜란드로 반환되었고,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서는 1821년 영국군이 철수했다.[9][10]
그러나 1814년 조약이 체결되었음에도 영국과 네덜란드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1814년 조약 체결 이후 1818년 믈라카를 반환받은 네덜란드가 말레이반도 일대에서 지배권을 다시 확립하기 시작하면서 영국 상선을 비롯한 여러 상선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11] 특히 조호르 술탄국의 영향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영국은 대립했는데, 1819년 영국이 싱가포르를 식민지로 수립하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12] 1819년 싱가포르 조약에서 영국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와 조호르 술탄인 후세인 무아잠 마흐무드 샤가 싱가포르의 통치권을 영국에 이양했는데,[13] 조호르 술탄국이 네덜란드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이유로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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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및 조약 체결
1820년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가 7월 20일부터 싱가포르 문제를 두고 네덜란드와 회의를 진행했지만, 양측은 핵심 논쟁 주제 대신 자유 항해권과 해적 소탕을 토론하여 이를 합의했다. 1822년 로버트 스튜어트의 자살 후 그의 뒤를 이은 캐닝이 1823년 12월부터 협상을 재개했다. 싱가포르에 대해 네덜란드가 양보하고, 네덜란드가 믈라카 해협 이북의 땅은 영국 식민지로, 그 이남은 네덜란드 식민지로 정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협상은 진전되었다.[1] 1824년 3월 17일 영국과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영국 런던에서 조약을 체결했다.[14] 1824년 4월 30일 영국이 조약을 발효했고, 1824년 6월 3일 네덜란드가 조약을 발효했고 양측은 6월 8일 발효된 조약을 교환했다.
주요 내용

대영제국 영향권 파항 왕국
싱가포르
네덜란드령 동인도 영향권 인드라기리 술탄국
리아우링가 술탄국
1824년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양국 국민들은 ‘최혜국 대우’의 원칙에 따라 영국령 인도, 영국령 실론, 그리고 말레이반도 및 인도네시아 제도 내 식민지에서 교역하되, 현지 법규를 준수한다.
- 상대국 국민과 선박에 부과되는 수수료는 제한된다.
- 상대국을 배제한 채 동방 국가들과의 추가 조약은 체결할 수 없다.
- 민간인이나 군사력을 사용해 교역을 방해하지 않는다.
- 해적 행위는 금지되며, 해적에게 은신처나 보호를 제공하거나 약탈품의 매매를 허용하지 않는다.
- 공무원은 유럽 본국 정부의 허가 없이 동인도 제도 내에 새로운 관청을 설치할 수 않는다.
- 영국 신민들은 말루쿠 제도, 특히 암본섬, 반다 제도, 테르나테섬 에서의 교역 접근권을 부여받는다.
- 네덜란드는 인도 아대륙 내의 모든 영토와 그에 수반된 모든 권리를 영국에 양도한다.
- 영국은 벵쿨루의 포트 말버러 공장을 포함한 수마트라섬 내 모든 영국 영토를 네덜란드에 양도하고, 앞으로 그 섬에 새로운 사무소를 설치하거나 그 통치자들과 조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 네덜란드는 말라카의 도시와 요새를 영국에 양도하고, 말레이반도 내에 사무소를 설치하거나 그 통치자들과 조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 영국은 네덜란드의 벨리퉁섬 점령에 대한 반대를 철회한다.
- 네덜란드는 영국의 싱가포르 점령에 대한 반대를 철회한다
- 영국은 카리문 군도, 바탐섬, 빈튼섬, 링가섬 및 싱가포르 해협 남쪽의 다른 섬들에 사무소를 설치하거나 그 통치자들과 조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했다.
- 모든 영토와 재산의 이양은 1825년 3월 1일에 이루어지며, 자바섬의 반환은 1817년 6월 24일의 자바 협약에 따라 이미 결정된 바와 같이 시행되었다. 다만, 네덜란드는 1825년 말까지 10만 파운드 스털링을 영국에 지불한다.
영향

1824년 네덜란드-영국 조약 이후 네덜란드는 인도와 말레이반도 내 식민지를 모두 포기하는 대신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을 반환받았다. 네덜란드가 싱가포르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영국 식민지로 인정하면서, 1826년 영국 정부는 싱가포르, 페낭, 믈라카, 딘딩을 하나의 영토로 통합하고 해협 식민지를 수립한 뒤 영국령 동인도 회사 직할지로 해당 식민지를 편입했다.[16] 이 시기부터 믈라카는 완전히 말레이시아의 역사에 편입되었고 언어와 문화 역시 말레이시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17]
이 조약을 통해 형성된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 사이의 경계선은 이후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국경이 되었다. 특히 1824년 조약을 통해 싱가포르 해협 남쪽의 영토는 리아우링가 술탄국이 차지하고 싱가포르 해협 북쪽의 싱가포르 섬과 부속 섬들이 영국 식민지에 편입되면서,[18] 이 경계선이 오늘날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의 기본 국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두 국가는 1973년 5월 국경 협정을 개시해 1974년 국경을 확정지었다.[19] 한편 네덜란드령 동인도는 1824년 조약을 근거로 나투나 제도도 네덜란드령 동인도 영토로 보고 해당 군도를 네덜란드 영토에 편입시켰다.[20] 해당 제도는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영토에 편입되었다.
1824년 조약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는 식민지 문제를 둘러싸고 1860년대부터 다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양측은 1870년 11월부터 1871년 11월 2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수마트라섬과 아체 술탄국, 그리고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를 두고 협상을 벌였다. 영국은 아체 술탄국과 수마트라섬에 대한 문제를 두고 네덜란드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를 영국 식민지로 편입하는데 합의했다.[21] 양측은 1872년 4월 20일 조약에 합의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이 조약을 수마트라 협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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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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