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네덜란드령 믈라카
네덜란드가 믈라카 지역에 수립한 식민지 거점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Remove ads
네덜란드령 믈라카(네덜란드어: Nederlands-Malakka)는 1641년부터 1825년까지 네덜란드가 통치한 믈라카 지역을 가리킨다.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이 한창이던 1641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조호르 술탄국과 연합해 포르투갈령 믈라카를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믈라카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직할 통치를 받게 되었고, 약 150년 동안 믈라카는 일본과 인도를 잇는 교역 항로 역할을 했다. 1792년 네덜란드 정부가 프랑스 혁명 전쟁에 참전한 뒤 1795년 플랑드르 전역에서 패배하면서 네덜란드 공화국은 붕괴하고 자매공화국인 바타비아 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1795년 오라녜 공 빌럼 5세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망명한 이후 일부 식민지를 그레이트브리튼에 양도했으며, 양도된 식민지 중에는 믈라카도 포함되었다.
1792년부터 지속된 프랑스 혁명 전쟁과 뒤이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대프랑스 동맹이 승리하였다. 프랑스에 병합된 네덜란드 지역은 1814년 연합 네덜란드 주권공국이라는 독립국이 되었고,[a] 영국과 네덜란드는 1814년 네덜란드-영국 조약을 통해 믈라카를 네덜란드에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영국은 1818년이 되어서야 믈라카를 반환했고, 반환한 이후에도 양측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영향권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결국 네덜란드는 1824년 네덜란드-영국 조약을 다시 체결해 믈라카 지역을 영국에 할양하기로 합의했다. 1825년 네덜란드 정부는 영국에 믈라카를 넘겼고, 1826년 영국은 믈라카, 싱가포르, 페낭을 하나의 행정부로 합친 뒤 해협 식민지를 수립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믈라카보다는 인근의 자바와 자카르타 지역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믈라카는 자연스레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2] 그러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정부는 믈라카 지역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3] 믈라카 지역은 당시 에도 막부의 데지마와 네덜란드령 인도를 잇는 교역로로서 그 역할을 했다.
Remove ads
배경
요약
관점
네덜란드의 향신료 무역

스페인 군주국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가 1580년 스페인과 전쟁을 선포하고, 1581년 네덜란드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긴 전쟁이 이어졌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스페인과 동군연합이었던 포르투갈 왕국의 향신료 비밀 무역로와 그 무역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4] 1590년대부터 네덜란드 공화국은 인도네시아 지역에 탐험단을 파견했고,[5] 1598년 야콥 판 넥이 스파이스섬(오늘날 말루쿠 제도)에 도착하고 1599년과 1600년 네덜란드에 귀한 향신료를 가져오는데 성공하였다.[6] 이 성공을 계기로 1600년 잉글랜드 왕국이 동인도 회사를 수립하여 네덜란드의 향신료 무역을 위협하자,[7] 당시 네덜란드 스타트하우더였던 오라녜 공 필립스 빌럼과 네덜란드 의회는 1602년 3월 20일 아시아 무역을 담당하고 있던 여러 회사를 하나로 합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수립하고,[8] 아시아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9]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아시아 진출
스페인이 프랑스 왕국, 잉글랜드 왕국, 네덜란드 등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며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10] 포르투갈 역시 1580년 이베리아 연합으로 스페인 제국에 병합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11] 양국의 경제적 쇠퇴는 잉글랜드나 프랑스 같은 서유럽 신흥 무역국에 기회를 제공하였고, 네덜란드 역시 1602년 동인도 회사를 수립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향신료 무역 독점에 대항하였다.[10]
네덜란드는 인도아대륙과 동남아시아 각지에 무역 거점을 마련했다.[12] 1603년 반탄섬에 첫 상관을 설치한 이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제도로 진출하며 포르투갈에 대항하는 동남아시아 각국과 동맹을 맺었다. 1605년에는 동인도 제도와 향신료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푸리캣에 상관을 설치했다.[13] 1609년에는 윌리엄 애덤스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인을 받고 에도 막부와 공식적으로 관계를 수립했다.[14] 1610년 암본을 동인도 회사의 본부로 설치한 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무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반튼 술탄국과 전쟁을 벌여 자야카르타를 점령하고 이곳으로 본부를 옮겼다.[15]
네덜란드 정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향신료 무역 독점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16] 유럽 본국의 상황이 네덜란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1609년 스페인과 독자적으로 휴전을 체결했다. 이 휴전의 결과로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였고,[17] 네덜란드는 대외 교역 및 무역 거점을 확충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18]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
네덜란드 공화국은 1602년 동인도 회사를 수립함과 동시에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여 포르투갈과 전쟁을 벌였다.[19]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은 네덜란드는 토착 원주민들과 연합해 포르투갈 식민지를 차지하는 한편, 포르투갈의 상선을 공격해 포르투갈의 주요 보물이나 향신료를 노획하기도 했다.[20]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 대만, 인도네시아 일대에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거점을 파괴하거나 점령하고, 인도양과 태평양 일대에 네덜란드의 무역로를 개설하는데 성공했다.[12]
네덜란드는 조호르 술탄국과 연합해 1606년 4월 29일 믈라카를 공격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었다.[21] 1608년에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군이 믈라카를 단독으로 침공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1623년부터 1637년까지도 주기적으로 네덜란드군이 포르투갈 선박의 항해를 방해하기도 했다.[22] 그러나 포르투갈령 인도군은 네덜란드군의 방해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Remove ads
같이 보기
출처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