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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보트

독일의 군용 잠수함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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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보트(영어: U-boat 유보트[*], 독일어: U-Boot 우보트[*])는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이 운용한 잠수함으로, 바다 밑의 보트라는 뜻의 “운터제보트(Unterseeboot)”의 약자다. ‘함(schiffe)’이 아닌 ‘정(boot)’으로 지정되어 있다. 19세기 중반에 독일 제국 해군이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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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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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47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기술 문제로 인하여, 잠수정지휘관을 역임한 칼 되니츠 제독이 그의 회고록에서 얘기했듯이 “필요한 때에 잠수할 수 있는 배”(가잠함)이란 말이 더 어울렸다. 그렇지만 유보트로 인한 연합군의 피해는 막대했다. 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호송 선단 공격에 투입되었다. 물론 대서양 호송 선단 전투에서 유보트의 피해도 컸으며, 당시 독일 해군이 사용 가능했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전력이 유보트 함대였고 해저의 암살자라는 칭호로도 불려왔다.

2차 세계대전 때 대표적인 유보트 7형을 보면 800t이며 속도 12노트,수중 4노트, 어뢰발사관 전방 4기 후방 1기(어뢰는 14기 탑재)였다. 그 중에 VII C형은 균형 잡힌 성능으로가장 많이 생산되었고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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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U보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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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잠수함의 건조가 금지되었으나 나치의 재군비에 따라서 건조를 재개하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1,158척을 건조하여, 연합군의 군함 ·상선 5,150척(총톤수 2157만 726t)을 격침시켰다. 이중에는 전함 ·항공모함 ·구축함도 포함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200∼300t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1,000t 이상의 것도 출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력이었던 U7형은 수상배수량 790t, 속력 17kn, 항속거리 1만 2000km이며, 어뢰발사관 5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1940년 6월 ~ 1943년 5월까지 최고의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연합군 수송전단을 발견하면 단독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근해에 있는 유보트에게 연락을 해서 3척~15척이 집단으로 공격한다. 외각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잠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서 중앙에서 연합군 수상함을 공격했다.

유보트 에이스 정장 : 퀸터 프린 (U-47,30척 격침) 요아힘 쉐프케 (U-100,97척) 오토 크레치머(U-99,46척)

연합군 수송 선단의 최고 사령관 : 도널드 매킨타이어 (유보트 7척 격침)

참고 설명:연합군 수송선단은 유보트가 부상하면 탐지 할 수 있는 신형 대수상레이다 탑재

결국 기간 중 753척의 유보트가 침몰당했고(해상에서 적의 공격 및 기타 원인으로 630척, 항구 내에서 기뢰 및 기타 원인으로 123척) 이와는 별도로 전쟁 끝 무렵 해외기지 철수 시 그들 승조원에 의해 자침 또는 폭파 215척, 그리고 종전 시 영국 또는 연합군 측에 빼앗긴 유보트도 무려 153척에 달했다.

형식별 제원

자세한 정보 형식, 배수량(t) ...

손실

자세한 정보 위치, 원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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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U보트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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