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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제임스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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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제임스궁 선언(Declaration of St James's Palace) 또는 런던 선언(London Declaration)[1]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이 발표한 목표와 원칙에 대한 최초의 공동 성명이었다.[2] 이 선언은 1941년 6월 12일 런던의 세인트제임스궁에서 열린 제1차 연합국 회의 이후 발표되었다. 영국, 4개 공동 교전국인 영연방 자치령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8개 망명 정부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및 자유 프랑스 대표들이 이 선언의 당사자였다. 이 선언은 추축국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연합국의 약속과 미래 평화의 기반이 될 원칙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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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프랑스 공방전 이후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망명 정부들이 런던에 자리를 잡고 영국과 협력하여 저항 활동을 조율하고 전투를 계속했다.[3] 샤를 드골의 6월 18일 항소 또한 자유 프랑스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1941년까지 에드바르트 베네시 휘하의 체코 국가해방위원회 또한 영국과 더욱 긴밀히 협력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임시정부로 인정을 받았다.[3]
발칸 전역 (제2차 세계 대전)은 1941년 6월 1일에 끝나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 모두 추축국의 점령 하에 놓였다. 두 정부 모두 망명했으며, 페타르 2세의 정부는 런던의 서방 연합국 망명정부에 합류했고, 요르요스 2세의 그리스 정부는 카이로에 자리를 잡았다.
추축국의 점령 하에 있지 않은 유럽 유일의 교전국 수도인 런던은 연합국의 외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3] 1941년 6월까지 런던은 이미 영국 본토 항공전과 그 후의 영국 대공습으로 11개월 동안 전투에 시달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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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및 영향
세인트제임스궁 선언은 세 가지 결의안을 발표했다. 첫째, 당사국들은 동맹을 확인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전쟁에서 서로를 도울 것을 서약하며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기로 약속했다. 둘째, 연합국은 단독 강화를 체결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으며, 추축국의 지배 위협이 사라지기 전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명시했다. 셋째, 연합국은 "모두가 경제적, 사회적 안보를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민족들의 자발적인 협력"에 기반한 평화 원칙에 전념할 것을 약속했다.[4][5]
이 선언은 전후 세계 질서에 대한 비전을 표명한 연합국의 첫 번째 성명이었다.[2] 1941년 8월, 영국과 미국은 대서양 헌장에서 이 비전을 보다 상세한 형태로 제시했다. 9월에는 영국-소련 협정에 따라 소련 대사 이반 마이스키가 참여한 두 번째 연합국 회의에서 헌장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1942년 1월에는 더욱 많은 국가들이 연합국 공동 선언을 발표하여 세인트제임스에서 처음 제시된 동일한 원칙들을 지지하고 추축국에 공동으로 저항할 것을 서약했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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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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